SVB 사태 증권가 반응은..."시스템리스크 제한적, 그래도 경계 필요"

단기자금의 유동성 프리미엄 확대 우려

소규모 은행 유동성 이슈 재발 여지...VC 자금조달 난항

'과잉긴축의 청구서'...3월 FOMC 25bp 인상 가능성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여파에 증권가가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스템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투자심리 위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국내 증시에는 단기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말 사이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던 SVB가 파산했다. 18억달러의 채권손실에 대응해 22.5억달러의 자금조달 계획을 발표했으나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예금 대량인출(뱅크런)로 무너졌다. 미국 금융당국은 SVB의 영업을 중지시키고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예금보호 절차에 돌입했다.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은 테크 업황 악화로 예금 인출이 이어지는 가운데 SVB가 18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감수하며 보유 국채를 매각하면서 예금 인출을 가속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상화폐 전문은행 실버게이트가 주요 고객사인 FTX 붕괴의 영향을 받아 파산하면서 최근의 뱅크런 심리를 자극했을 가능성도 있다.

증권가에서는 SVB발(發) 시스템 리스크는 제한적이나 금융여건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남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자금의 유동성 프리미엄 확대와 그로 인한 금융여건 악화로 인한 경제활동 위축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FDIC 발표대로 예금보호 초과분에 대한 전액 반환이 자산 매각 후에 이뤄진다면 운전자금 조달을 위한 소규모 기업들의 단기자금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불확실성 확대로 인해 경제주체들의 현금보유 성향이 급증해 예금인출이 발생한다면 소규모 은행들의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SVB의 문제를 실리콘밸리의 특수 케이스로 축소 해석하기 어렵다"고 봤다. 단기로 조달해 장기로 투자하는 구조를 가진 주체들은 SVB와 동일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SVB 사태 이후 주택저당증권(MBS) 보유 비중이 높은 지역은행들의 낙폭이 커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저원가성예금의 이탈 압력이 지속될 경우 자본완충력이 상대적으로 열위한 하위 금융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이슈 재발 가능성이 있다"며 "포트폴리오 구조의 집중도와 금리 민감도가 높은 금융사는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벤처캐피탈(VC)과 스타트업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VC, 스타트업의 경우 전반적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투자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번 사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긴축 속도조절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50bp가 아닌 25bp를 단행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신영증권의 경우 '과잉긴축의 청구서'라는 표현과 함께 "연준의 과잉 긴축에 따른 여파가 곳곳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신얼 연구원은 "연준의 더 높은 기준금리를 장기화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현재 연준이 제시한 최종금리는 5.1%로 파월 의장의 의회 증언을 고려하면 5.4% 정도로 상향될 수 있었다. 하지만 SVB 사태의 파급 효과를 예단하기 어렵기에 최종 기준금리 인상 폭은 최소화되거나 동결될 수 있겠다"고 분석했다.

박소연 연구원도 "3월 FOMC에서 파월 의장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가 중요하다. 50bp 인상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인상 기조 자체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시장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 있다"며 "추가적인 금리인상 속도와 폭이 빠르고 클수록 조달과 운용에서의 장단기 미스매칭 문제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나 경계가 필요하다고 봤다. 14일 미국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와 22일 3월 FOMC가 예정된 만큼 연준의 통화정책 향방과 SVB 파산의 전염 우려가 결부돼 단기 주가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파산이 위험자산 회피심리로 작용해 단기 주가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실적에 기반한 옥석 가리기에 나설 필요가 있다. 양호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으나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경우 매수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SVB의 주고객층이 바이오벤처, 테크 관련 신생업체인 만큼 관련 업종 투자심리는 단기적으로 불안할 것"이라면서도 "증시 전반에 걸쳐 대형 악재가 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융주 주가 하락은 한국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나 현재는 적정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SVB와 한국 금융기업 사업모델이 다르다는 점도 다소 민감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지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기업과 민감도가 높은 미국 빅테크는 SVB 파산 영향권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며 "미국 IPO 시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겠으나 한국 주식시장에 민감하게 영향을 줄 지점은 아닐 듯하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환율과 밸류에이션을 경유해 한국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향후 사태 경로에 따라 동태적으로 달라질 수 있지만 아직까지 영향력은 미국 내부에 집중되는 관계로 달러 강세를 강하게 자극할 요인은 아닐 듯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