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섭 "남양유업 기업가치 훼손 막을 것"

차파트너스 추천으로 남양유업 감사 선임

KISCO홀딩스 감사위원 안건은 부결

심혜섭 "주주행동주의 '반쪽의 성공'? 주주제안 부결돼도 유의미"

"가치투자, '싼 기업' 골라야...의결권은 당연한 주주권리"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이 부결되더라도 주주들의 강력한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성공이다. 감사로 선임되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회사와 끝까지 싸우는 것보다 소통을 통해 주주환원을 높이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이달 1일 남양유업 감사로 선임된 심혜섭 변호사가 최근 조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심 변호사는 행동주의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내세운 후보로, 주총에서 12만표의 찬성을 받았다. 그는 가치투자자로 활동하며 KISCO(키스코)홀딩스 주주연대를 직접 이끌기도 했다.

심 변호사는 남양유업 감사로서의 계획에 대해 "경영권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기업가치 훼손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이사회를 견제·감시하며 적법하게 운영되도록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가치투자와 관련해서는 "싼 기업을 골라야 한다. 적극적인 가치투자 방법으로는 인게이지먼트(관여)해서 주가를 기업가치에 일치시키는 주주행동주의가 있다"며 "투자한 뒤 주가가 오르길 가만히 기다리는 건 시간낭비다. 역동적인 과정에 참여하다 보면 배움의 기쁨이 클 뿐만 아니라 당연히 돈도 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남양유업 감사로 선임된 과정은 어땠나.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이 큰 역할을 했는데.
=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추천을 받아서 남양유업의 감사후보로 나섰고, 주총 표 대결에서 승리해서 현재 남양유업의 상근감사로 일하고 있다. 홍원식 회장의 경우 특수관계인까지 해서 상당히 많은 지분(53.08%)을 갖고 있는데 '3%룰'에 의해 3%의 의결권만 인정됐다. 그래서 내가 다른 펀드나 일반주주와 힘을 합쳐 비교적 용이하게 감사로 선임될 수 있었다.

■ 남양유업의 거버넌스에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개선시킬 계획인가.
= 남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의 이사회가 독립적이지 않다. 감사는 이사회의 일원이 아니지만 이사회에 참석해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사회를 견제·감시하고 '이렇게 하면 주주 전체의 이익에 반한다'라는 걸 알려주며 좀더 적법하게 운영되도록 할 생각이다.

특히 남양유업은 현재 경영권이 바뀔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 경우 양도인은 주식양수도계약에 따라 가격이 82만원으로 고정돼 있어 굳이 기업가치를 높일 유인이 없다. 기업가치가 훼손된다 해도 정해진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업가치 훼손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키스코홀딩스 주총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선임되지 못했다. 패인이 무엇인가.
= 키스코홀딩스는 행동주의를 하기에 부적합한 회사다. 지분이 분산돼 있어 표 대결로 이긴다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감사위원이 되는 기타 비상무이사의 경우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통틀어 딱 3%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는 지배주주 각각마다 3%룰이 적용된다. 키스코홀딩스는 지배주주가 5명으로, 합치면 15%나 된다. 그래서 2만표 차이로 아쉽게 졌다.

지금은 회사와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잘 된다. 어떻게 하면 회사가 발전할까 주주환원을 할까를 두고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를 논의 중이다. 오히려 감사가 되면 회사랑 끝까지 싸웠다는 의미가 돼서 안 좋은 면도 있다. 얘기가 잘 되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투자자의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참여할 수 있는 채널도 늘어났다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전자위임장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에 걷힌 위임장 중 2/3가 전자위임이었다. 또 MZ세대 투자자들은 주주로서의 권리도 확실히 찾더라. 주주연대 집행부와 위임장 수거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올해 주총 시즌에서 주주행동주의가 큰 관심을 받았지만 주주제안이 부결된 경우가 많아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나.
= '3%룰'이 적용되는 감사나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안 말고는 대부분 주주제안이 부결된다. 주총은 표 대결을 통해 이기고 지는 게 전부가 아니다. 주주들의 의사를 경영진에게 전달하고 서로 의사소통하는 통로다. 주주들의 의사가 강하게 결집된 위임장이 전달되는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감사로 선임되고 말고는 부차적인 문제고, 주주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이미 성공이다.

주주제안까지 안 가는 게 진짜 성공이다. 주총 전에 비공개로 의사소통을 해서 합의가 되면 주주제안이 필요없어진다. 이렇게 해서 주주제안이 중간에 철회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앞으로 성공사례가 크게 늘어날 것 같다. 행동주의 캠페인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노하우가 계속 전파된다. 내년에는 훨씬 더 많은 행동주의가 탄생할 것이다.

■ 금융당국이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손보기로 했다. 운용사가 주주권익 보호와 기업가치 제고에 부합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 자산운용사들이 의결권 행사에 굉장히 소극적이다. 적극적으로 주주행동주의에 나서지 않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아예 행사하지 않거나 대주주 편에 서는 경우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펀드를 운영하는 수탁자는 가입자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서 수익률을 높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 말이다.

아마 해당 기업과의 관계 때문에, 기업 가입자를 위해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거나 편을 드는 것 같다. 운용사는 펀드에 돈을 맡긴 가입자의 의결권을 대리 행사하는 입장에서 이를 영업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가이드라인이 강화되면 기관투자자 사이에서 '연성규범'으로 역할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지 않자니 부담스러운 상황이 계속 발생하면서 점차 따르는 펀드가 늘어나게 될 거라 본다.

■ 대형 로펌에서 나와 주주행동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 가치투자를 위해 기업을 공부하다 보면 그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변호사로서 주주연대나 자산운용사로부터 사건을 수임해서 돈을 벌자는 생각과, 가치투자자로서 스스로 투자해서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돈도 벌자는 생각으로 2014년 로펌을 나왔다.

■ 가치투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실제 가치보다 주가가 싼 기업에 투자하는 걸 가치투자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투자한 다음 오랫동안 기다리는 소극적인 가치투자를 한다. 좀더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인게이지먼트(관여)해서 주가를 기업가치에 일치시키는 주주행동주의가 있다.

■ 가치투자자로서 고수하는 투자원칙이 있다면.
= 일단 싼 기업을 골라야 한다. 주주행동주의를 하는 사람들 중 싸지 않은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감사 선임이 용이하다든지, 지분율이 낮거나 약점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만 골라서 하는 식이다. 그건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기업의 실제가치와 주가에 큰 괴리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 그 원칙에 따라 최근 주목하는 기업은.
= 주주행동주의를 직접 실천했던 키스코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철강, 시멘트, 제지, 부품 등 전통산업이나 지주회사가 주목할 만하다. 그중에서 좀 더 싼 기업, 사업의 퀄리티가 좋은 기업을 추천한다.

■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통과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나.
= 법무부장관이 상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한 만큼 이뤄지리라 생각한다. 우리 자본시장이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상황인데 뭐라도 해야지,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나. 중요한 건 법안이 통과된 다음이다. 법은 기초적인 길을 닦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법 원칙에 맞게 소송을 제기하고 주장을 하면서 실제 사례를 쌓아나가야 한다.

■ 이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 주주연대나 단톡방이 있다면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 내가 주주연대를 이끌어 보니 엄청 쉽고 재밌더라. 투자한 뒤 주가가 오르길 가만히 기다리는 건 시간낭비다. 의결권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주주총회장 말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식으로도 행사할 수 있다. 주주들이 모여서 권리를 행사하다보면 회사와 정치인들이 주목하게 된다.

■ 투자자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
= 주주행동주의라는 역동적인 과정에 참여하다 보면 즐거움과 배움의 기쁨이 상당히 클 뿐만 아니라 당연히 돈도 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는 내 한 표가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과몰입하지 않나.

근데 의결권은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키스코홀딩스 주총에서 2만표 차이로 졌다. 2만주, 4억원이면 '큰손' 한 분만 더 찬성했더라면 이길 수 있는 수준이다. 의결권은 개별 기업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니까 많은 관심을 기울여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