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진경산수화의 대표작 '인왕제색도'. 여름날 소나기가 내린 후 육상궁(毓祥宮) 뒤편 북악산 줄기의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
세무서에 들어서자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진경산수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무더운 여름, 소나기가 스치고 지나간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금강산 실경을 담아낸 '금강전도', 현재 약사사로 불리는 개화산의 사찰을 그린 '개화사도' 등 강서 지역을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의 대표작들이 줄 지어 전시돼 있다.
색채가 다양한 서양의 수채화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하고 웅장한 모습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강서 지역의 아름다운 경관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강서세무서를 내방한 납세자들 중에는 한동안 가만히 그림을 응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림의 마지막에는 겸재 정선의 사진과 그의 일대기가 적혀있다. 그리고 한켠에 '강서세무서장 최기영, 과장 일동'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강서세무서는 지난 달 2일부터 양천향교 근처에 위치한 겸재정선 미술관의 그림 10점을 인화해 세무서 1층에 전시하고 있다.
겸재 정선은 1740년부터 1745년까지 양천 현령(지금의 강서구청장)을 지낸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강서 지역을 진경산수의 산실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강서세무서는 "관내의 자랑인 겸재 정선의 작품을 '겸재정선미술관' 디자인 시안작업 등의 협조를 받아 전시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전시는 오롯이 최기영 강서세무서장과 과장들의 찬조로 제작됐다는 전언이다.
최기영 강서세무서장은 "각종 세금 신고 기간이면 수많은 납세자들이 세무서를 찾게되는데, 긴 대기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볼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전시를) 추진했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또 "세무서를 방문하는 납세자들에게 강서를 대표하는 화가인 겸재 정선을 알리고, 또 업무에 지쳐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세무서 직원들을 위해 과장님들과 함께 마련했다"라고 덧붙였다.
◆…강서세무서 1층 한쪽 벽에 전시된 정선의 진경산수화들.
작품 전시 소식이 서울지방국세청 내부메일을 통해 공유되자, 타 세무서 직원들도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서울 세무서 과장은 "평소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은데, 강서세무서에서 이런 시도를 했다니 너무 신기하고 재밌다. 우리 세무서도 이런 기획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며, "한번 건의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무서 직원은 "업무를 하다보면 문화생활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 더군다나 명화 감상은 더 어려운데, 세무서에 전시를 할 생각을 했다니 너무 신선하다"고 전했다.
납세자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겸재 정선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던 한 납세자는 "우리 지역에 겸재 정선이라는 화가가 있는지 몰랐는데 새롭게 알게 됐다. 세무서에서 그림을 전시하는 건 처음 보는데 좋은 시도인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납세자는 "솔직히 좋은 일로 세무서에 방문하는 일은 드문데, 뜻밖에 명화 감상을 할 수 있게 돼서 기분전환이 됐다"고 말했다.
◆…최기영 강서세무서장과 세무서 과장들.(사진 = 강서세무서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