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약, 집주인 '디폴트' 위험 있지만 보완장치 미비
LTV·DSR 규제 없이도 대출 받는 집주인
'갭투자' 쉽게 해 집값·거래변동성 높일 여지
◆…대전 서구 도마동 다가구주택 골목. 서구 다가구주택 임차인 20여명은 3월 대전 서부경찰서에 전세 사기 피해를 호소하며 임대인 A씨와 다른 임대인 B씨를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저금리 전세자금대출 등 정책자금대출이 임차인(세입자)의 전세자금 마련을 도와준다는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임대인(집주인)의 대출상환 리스크에 대한 보증의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입자가 받은 대출자금이 전세계약을 통해 집주인에게 지급되므로, 결국 집주인은 여신심사 없이도 세입자를 통해 금융회사로부터 대출을 받는 셈이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전세 제도의 거시경제적 위험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전세자금대출 보증비율을 점진적으로 낮춰 전세계약의 불완전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세계약은 임대인이 거액의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고, 임차인은 월세보다 낮은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계약당사자 간 상호이익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전세가격이 단기간에 급격히 하락하고, 전세계약 만료시 임대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전세보증금 상환 위험이 매우 크다.
박 연구위원은 전세계약의 경제적 위험요인으로 거래상대방 위험에 대한 보완 장치가 미비한 점을 들었다. 그는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다면 대출에 대한 채무불이행(디폴트)이라고 볼 수 있다"며 "그러나 전세계약에서는 임대인이 어떤 식으로 페널티를 받는지, 혹은 임차인에게 어떤 식으로 보상할지를 충분히 명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전세계약은 대출계약과 매우 흡사한데도, 과잉 대출에 대한 규제 적용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임대인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한도 40%만큼의 대출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전세보증금이 주택가격의 40%라면 사실상 임대인은 80%를 대출받을 수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더 불분명하다. 임대인의 전체 부채 수준이나 소득이 고려되지 않으므로 임대인의 DSR, 혹은 전세보증금 반환 위험이 평가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아울러 전세계약은 임대인의 '갭투자'를 쉽게 해 주택가격 및 거래 변동성을 높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전세보증금이 주택가격의 80%라면 임대인은 나머지 20%의 자기자금만 가지고도 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
박 연구위원은 "전세계약으로 인한 가계부채의 과도한 누적을 방지하는 것은 중요한 정책과제"라며 "현재 시행 중인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도한 전세보증금이 다양한 측면에서 경제적 위험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장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효과"라며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대출을 쉽게 만들어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자금대출 보증비율을 낮춘다면 제도가 본래 취지와 달리 임대인의 대출 상환리스크에 대한 보증 역할을 하는 문제도 완화할 전망이다.
박 연구위원은 "전세자금대출 보증은 사실상 금융회사가 직접적으로 여신심사 등을 통해 검증한 바 없는, LTV·DSR 등 규제 적용이 불분명한 대출에 대한 보증과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전세자금대출은 보증회사를 통해 거의 100% 보증된다.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는 90%, 주택도시보증기금(HUG)과 서울보증보험(SGI)은 각각 100%다.
그는 "이 비율이 낮아진다면, 전세보증금 총액에 비해 대출로 조달할 수 있는 규모가 작아질 것"이라며 "이는 다시 100% 보증금만 있는 전세계약이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대체하는 보증부월세 계약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크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