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트위터
바그너 그룹은 근본적으로 해체되거나 재구성되지 않았고, 프리고진도 살해되거나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반란에 가담한 바그너 그룹에 대한 숙청도 진행되지 않은 것은 물론 그렇다고 그들을 '초 애국자'로 인정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표면적으로 러시아는 거의 정상적인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푸틴 정권이 다시는 예전처럼 철옹성 같은 권력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떨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란을 계기로 러시아 엘리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으며 이는 향후 수십 년간 정치적 지형을 가름하는 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란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진행되었고 바그너의 움직임에 대한 푸틴의 분노와 모스크 진격을 앞두고 자신을 뒤돌아본 프리고진, 벨라루스 루카센코의 중재, 바그너의 퇴각 결정에 이어 6월 29일 푸틴과의 회담을 거쳐 바그너 그룹은 벨라루스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다.
반란 배경에는 당사자들 간에 너무 큰 간극이 있었다. 푸틴은 자신의 요리사였던 프리고진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과격화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해 갈등이 치명적인 결과로까지 확대되도록 방치했다.
반면, 프리고진은 푸틴이 요구에 부응해 군 지도부를 개편하고 바그너 그룹을 군대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무장까지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하며 자신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우를 범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제 모든 것이 정리된 것처럼 보인다. 프리고진은 자신의 무력 도발이 실수였음을 이해하고 있으며 푸틴은 프리고진을 위험한 배신자라기보다 전쟁 공포 속에서 순간적으로 오판한 애국자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반란의 결과로 러시아에 구축한 자산(미디어 제국, 사업의 일부, 전쟁 영웅으로서의 명성)을 잃고 벨라루스로 추방되었으며 프리고진 후임에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한 알렉세이 프로셰프 휘하에 바그너 그룹을 두도록 추진되고 있다. 어쨌든 푸틴은 반란에 가담한 자들이 러시아에 머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함께 러시아군 지휘부도 명성에 많은 손상을 입으면서 하급 지급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표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달 초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과 의견 충돌 후 널리 존경받는 제58 연합군 사령관 이반 포포프 소장이 직위 해임돼 시리아로 파병되었고 106공수 사단장 블라디미르 셀리버스토프 소장과 공수부대 사령관 미하일 테플리츠키 대령의 해임설도 파다하다.
이러한 군내 변화는 프리고진 반란 동조세력에 대한 숙청이라기보다는 게라시모프와 쇼이구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따른 조치로 보이며 결국 푸틴이 게라시모프와 쇼이구를 교체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반란으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집단은 러시아 첩보기관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연방 보안국(FSB)은 가장 급진적 극우 인사 중 한 명인 거킨을 체포할 수 있었던 때문이다. 그는 서방에 있는 동안 2014년 298명이 사망한 MH17편 추락사고에 가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방식과 관련, 푸틴을 맹렬히 비난, 극단주의적 극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외정보국(SVR)도 '폴란드의 위협'을 현실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푸틴이 최근 국가 안보회의와 루카센코와의 회담에서 '폴란드의 음흉한 의도'에 대해 공개적인 발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번 반란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푸틴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을 통제했다는데 얼마나 큰 자신감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을 스스로 만들어 냈고, 우유부단함으로 정부가 마비된 것은 물론 프리고진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을 모든 국민 앞에서 보여줬다.
국민들은 어려운 시기에 푸틴이 정말 필요한 지도인지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수직적 권력 관계는 해체되고 강력한 철권 대신 바그너그룹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는 수십 개의 미니 프리고진이 기회를 노리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