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와 극지방 사이 온도 차 줄면서 태풍 속도 느려져
태풍...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수증기 다량 비축해 수명↑
◆…10일 태풍 카눈의 상륙으로 강원 영동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강릉시 노암동∼월호평동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가 물에 잠겨 교통이 통제되고 있다. 2023.8.10 사진=연합뉴스
제6호 태풍 '카눈'이 10일 경남 거제에 상륙한 뒤 수도권을 지나 11일 오전 6시 북한 평양 인근에서 소멸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6시 현재 공공시설 184건, 사유 시설 177건의 피해가 집계됐다고 밝혔다. 도로 침수·유실은 64건(부산 39건, 경북 11건 등)이며 토사 유출은 6건, 제방 유실 10건, 교량 침하 1건, 기타 98건 등이다. 주택 침수는 30건(강원 19건, 대구 11건)이며 주택 파손은 3건으로 집계됐다.
카눈은 강도 '중'으로 경남 거제에 상륙해 이후 충청권에 진입하기 전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일반' 상태로 수도권까지 진출했다. 한반도를 통과한 태풍 카눈은 이례적으로 느린 속도를 보이면서 수명도 길어 예년과 다르다는 분석이다.
보통 태풍은 지향류를 따라 움직인다. 국내에 상륙하는 태풍 대부분은 시계방향으로 부는 지향류를 따라 남서쪽에서 북동쪽을 향해 움직이는데 카눈은 달랐다.
카눈은 자신을 이끌어줄 지향류가 없다보니 자체 회전력으로 북상했으며 남한지역을 지나는 데만 약 20여시간이 걸렸다. 지향류는 태풍의 이동방향과 속도를 좌우하는 대기의 흐름을 말한다. 카눈은 이례적으로 긴 시간 국내에 체류한 태풍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처럼 태풍의 이동속도가 느려진 것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크다. 고위도 지역 평균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고위도와 열대지역 온도 차가 작아지자 중위도지역의 바람 세기가 약해졌다. 그 결과 태풍을 끌어주고 밀어주는 힘도 약해져 북대서양 허리케인과 남태평양 사이클론, 서태평양 태풍의 이동속도가 각각 6%, 15%, 20% 줄었다.
지난 2018년 미국 해양대기청(NOAA) 국가환경정보센터(NCEI)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태풍의 이동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지목했다. 연구팀은 1949~2016년 사이 전 세계에서 발생한 태풍의 평균 이동 속도를 분석한 결과 태풍의 이동 속도가 지구 전체적으로 10% 이상 느려졌으며 이 기간 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은 약 0.5℃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SIT) 연구팀은 태풍 수명 변화와 해수면 온도 변화 사이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자료=OSIT
특히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북태평양 서쪽 지역의 태풍 이동 속도가 가장 느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속도가 무려 20%가 줄어들었다. 뒤를 이어 △호주가 속한 남서태평양이 15% △북동태평양이 4% △북대서양 6%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이 속한 서인도양이 4% 정도 속도가 느려졌다. 연구팀은 지구온난화로 적도지방과 극지방 사이에 온도 차가 줄면서 태풍의 속도가 느려졌다고 분석했다.
지구온난화는 태풍 수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20년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SIT) 연구팀은 1960년대와 비교해 2010년 대의 태풍이 2배가량 천천히 소멸된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1967년부터 2018년까지 50여 년 동안 북대서양 지역으로 상륙한 태풍들을 분석한 결과 해가 갈수록 태풍이 약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자료=NOAA
원래 태풍은 해수면에서 공급되는 수증기를 연료 삼아 세력을 키우는데 내륙에 상륙하면 수증기 공급이 끊겨 태풍이 소멸하게 된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태풍이 많은 수증기를 비축하게 돼 이로 인해 오랫동안 세력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중 6개 태풍의 평균 수명은 지난해 태풍의 평균 수명인 3.7일보다 2배 이상 긴 8일이었다. 카눈 역시 괌 서쪽 730㎞ 해상에서 태풍으로 발달해 대만과 일본에 영향을 주고도 우리나라까지 강한 태풍으로 북상해 약 보름 만에 열대저압부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