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대통령이 직무 수행하기 어려워"
어려운 시기마다 노무현 대통령이 뽑아들던 카드 '당원에게 보내는 편지'가 다시 한 번 등장했다. 지난 2005년 '대연정'이란 큰 틀의 정치연합회 구성에 앞서 노 대통령은 2004년 7월에도 '당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대연정 구성의 사전 의지를 피력했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일 인도네시아 방문에 앞서 '우리 모두의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라는 제하의 편지를 당원들에게 보내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탈당문제와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글은 4일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공개됐다.
노 대통령은 먼저 "당적 문제를 이야기한 것은 임기 말에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 전략과 탈당 압박 속에서 마침내 당적을 포기한 역대 세 분 대통령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내놓은 것"이라며 탈당은 없을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이 탈당이 기정사실로, 나아가 당정 결별로 보도되어 해명을 했다"면서 "그러나 이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지 않아 매우 송구스런 마음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여당 의원들에 대한 서운함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창당 이후 지난 3년여 동안 아홉 차례나 당 지도부가 바뀌었다. 지도부가 제대로 일을 해보지도 못하고 각종 선거 패배 혹은 언론의 뭇매 등으로 사퇴하는 혼란이 지속되었다"면서 "주요 정책과 노선에 대해 당론을 결집하기도 어려웠고, 매사 지도부를 흔드는 조직윤리의 부재현상 또한 적지 않았다"면서 당지도부와 함께 연대책임이 있음을 시인했다.
통합신당 추진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저는 우리당의 정책적·역사적·법적 정체성을 유지·변화·발전시켜서 국민 속에 뿌리내리는 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통합신당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모른다. 민주당이나 특정 인물이 통합의 대상으로 거론될 뿐이며, 구(舊)민주당으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자 기득권을 포기하고 결단했던 우리당이 다시 지역구도에 기대려 한다면, 이는 역사와 국민과 당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며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등을 통해 완화되고 있는 지역구도가 내년 대선과 맞물려 다시 강화되고 고착화될 것이란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은 최근 국정운영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분이 무엇이고 그 책임과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는 저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대통령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상황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한나라당이 흔들지 않는 일이 없다"면서 "야당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런 정책적 대안도 없고, 대화나 타협도 거부하고, 국회의 절차도 거부하니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야당에 대한 답답함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도 제대로 행사할 수가 없다.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발목이 잡힌다"면서 "인사권마저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면 대통령의 직무수행은 참으로 어렵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국정의 표류가 반복되는 구조적인 문제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면서 "국정 표류 문제는 대통령 개인의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소야대 그것도 지역구도하의 다당제와 결합된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정치구도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오늘날 한국의 여소야대는 지역구도하의 다당제와 결합되어 정당간의 정상적인 경쟁과 협력정치를 근본적으로 어렵게 한다"면서 "정책보다 지역간의 정치적 대립과 불신에 바탕한 지역구도는 대화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고, 규칙과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정치를 낳는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런 교착상태를 풀어보고자 지난해 연정을 제안했다"면서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연정은 불가능한 상태이고, 제가 다시 제안할 수도 없지만 연합정치는 한국정치의 발전과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언젠가는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