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지식과감성
6·25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슬픔을 안겼다. 기나긴 비극의 시간이 막을 내렸지만 누군가는 고향을, 가족을, 친구를 잃었고 그리움의 눈물만 삼키게 했다. 그렇게 한반도를 오갈 수 없도록 분단된 채 74년이란 세월만 속절없이 흘렀다.
1930년 함흥에서 태어나 대학교 1학년까지 재학했던 저자 한희나가 '전장에 두고 온 학생증'을 통해 참혹했던 전쟁을 증언했다. 북한 태생이지만 자유주의 국가에서 학업을 이어가겠다는 꿈으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국군에 자원입대한 저자의 생생한 6·25전쟁 이야기는 손녀의 노력이 더해져 한 권의 서적으로 꾸려졌다.
잠시 후, 앞마당에서 숨이 막혀 "억억, 끼끼, 꺼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애처롭고 해괴한, 난생처음 들어보는 죽음 직전의 소리였다. 누가 저렇게 애처롭게 죽는가. 혹시 우리 전우는 아닐까 걱정도 되고 섬뜩하여 온몸에 찬 기운이 도는 듯했다.(본문 중에서)
미디어에서 접하는, 혹은 기록물로 마주하는 전쟁은 굵직한 전투의 결과 정도만 확인되는 경우가 흔하다. 창작물로 재탄생되는 때를 제외한다면. 저자는 세월이 지나도 비참했던 전투 체험이 잊히지 않아 기억나는 것을 30대 중반부터 틈틈이 기록해 뒀다고 말한다. 최일선 수색대원의 전쟁 경험담이 수기로 남아 섬뜩했던 순간순간을 간접 체험케 한다.
가족과 친구의 곁을 떠나 국군으로 참전해 고향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지은이는 자유를 갈망하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계획했던 꿈은 남한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었기에 주머니에 학생증만은 반드시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그 의지가 엿보인다.
고지 점령, 사수 등 죽을 고비를 넘기며 혁혁한 공을 세워도 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 과정에서 저자는 인민군에 포로로 잡히는 순간까지 맞이한다. 당시 경험한 하루하루는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향한 동아줄을 부여잡고 간신히 다만 끈질기게 버텨낸 생의 노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막상 전쟁터에 나가 보니 산다는 생각은 버려야 했습니다. 싸우면서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겪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천운이라 여겨지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신기하여 기적 같았습니다."
독자는 그의 이야기를 쫓으며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호국영령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누리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자유와 평화가 결코 희생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할아버지를 도와 책으로 엮은 손녀 한다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빼앗기고, 징집되고, 죽어 나가고 있으며 각종 범죄가 재생산되고 이산가족 문제, 난민 및 고아 문제 등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더 이상의 피해 없이 모든 사람들이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받고, 협력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전장에 두고 온 학생증 / 한희나 지음 / 한다희·한진영 엮음 / 2만 1000원 / 지식과감성 펴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