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이이(李-李)의 대결'로 굳어지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물론 고위직 인사 특성상 막판 '돌발변수'가 상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대통령 재가가 떨어질 때까지는 '누가 된다'고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누가 된다'가 아닌, '누가 되어야 한다' 정도의 언급은 가능합니다. 특히 납세자 권리 구제의 최일선 조직인 '국세심판원'이란 기관의 장(長)이 가지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원장 자격요건'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 심판원장 자격요건-①, '조세전문가' =심판원이란 조직은 친(親)정부 색채보다는 친(親)납세자 색채가 진해야 정상인 조직입니다. 납세자 권리 구제라는 본연의 임무 때문이지요.
심판원장, 또는 심판원 상임심판관(국장)이 되려면 가장 먼저 '조세전문가'여야 합니다. 이는 현행 법에서도 요구하는 바입니다(현행 국세기본법에 일정기간 근무경험을 갖춰야만 임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지요).
심판원 업무체계상 실질적인 결정권한은 상임심판관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상임심판관은 '당연히' 조세전문가일 필요가 있지요. 사실 심판원장은 '결정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밑에서부터 올라온 심판사건 중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심판사건을 골라내 상급심인 '합동회의(세세한 설명은 생략)'에 부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세금관련 다툼에서 논란의 여지(오류의 가능성)을 찾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심판원장이 조세전문가여야 한다는 것은 이 부분에서 확연해 집니다. 역대 심판원장의 면면을 봐도 그렇습니다. 2000년 이후(그 전에도 마찬가지) 심판원장직을 수행한 이들은 오랫동안 조세분야에 몸담았던, 소위 '한 가락씩' 한다하는 조세전문가들이었습니다.
2000년도 이후 심판원장직을 거쳐간 인물들은 이용섭 현 건교부 장관(2000년 6월∼2001년 4월), 최경수 현 계명대 교수(2001년 4월∼2002년 2월), 한정기 현 대우증권 사외이사(2002년 2월∼2003년 4월), 전형수 현 김&장 고문(2003년 4월∼2004년 7월), 최명해 현 김&장 고문(2004년 7월∼2005년 5월), 이종규 현 코스콤 사장(2005년 6월∼2006년 2월)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다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한 눈 팔지 않고 조세분야에서만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채수열 현 원장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 심판원장 자격요건-②, '융통성' =사실 조세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공직자들의 성향은 다소 국고주의 색채를 띄는 것이 보통입니다(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안 좋은 표현을 빌리자면 '융통성'이 다소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심판원은 납세자 권리 구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떠 안고 있는 조직입니다. 따라서 심판원장의 성향에 국고주의 색채가 너무 강하면 제대로 된 납세자 권리 구제가 이뤄지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심판원 결정권자들이 국고주의라는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결과적으로 모든 피해는 '납세자'가 뒤집어 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사안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융통성', 심판원장 자격요건 중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앞서 심판원장은 조세전문가여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심판원이란 조직의 특성상(실질적 결정권 행사주체가 심판관들이라는 측면에서) 조세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넘쳐 나는 소신이 실질적인 결정권 행사의 주체인 심판관들의 결정권 행사 범위를 크게 줄여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실제로 드러나지 않는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심판원장 자격요건에 '융통성'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부분에서도 증명이 되는 셈이지요. 심판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심판원장은 조세전문가여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임을)너무 표를 내서도, 너무 내지 않아도 안 된다"고 말입니다.
□ '적재적소(適材適所)' 인사가 필요한 이유 =과거 수 십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 관료인사에는 해괴망측한(?) 원칙이 따라 다니곤 합니다. 흔히 능력위주의 인사, 적재적소 인사라고 거창하게 떠들어대지만 물밑에는 이 해괴망측한 원칙이 작용한 흔적이 적지 않습니다.
지연과 학연으로 대표되는 '연고주의(緣故主義)'가 이 해괴망측한 인사원칙의 실체입니다. 이 연고주의가 고위직 인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공직사회에서 흔히 쓰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자조적 표현도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사회에 짙게 깔려 있는 연고주의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비롯됐을 수도 있습니다.
수 차례 강조했듯 국세심판원이란 조직은 납세자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주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과세관청의 '횡포'에 맞서 납세자를 보호하는 것이 심판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어떤 정부부처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기관이 바로 심판원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심판원장(또는 심판관) 인사에 있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된 심판원 행정의 피해는 납세자들이 몽땅 뒤집어 쓸 수밖에 없습니다. 납세자 권리구제 기관이 납세자 권리를 오히려 침해해 버린다면 심판원이란 조직의 존재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없애 버려야 겠지요.
현재도 심판원장 인선을 두고 참 확인이 어려운 설왕설래(說往說來)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리의 중요성 만큼이나 많은 이들의 이목(耳目)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심판원장 후보로 한 번이라도 거명된 사람들은(가나다순) 권혁세 재경부 재산소비세국장(행시 23회), 김도형 재경부 조세기획심의관(행시21회), 이광호 심판원 상임심판관(행시21회), 이희수 재경부 조세정책국장(행시22회), 허종구 국세청 개인납세국장 등입니다.
다들 내로라 하는 조세전문가들이요, 능력을 갖춘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자리 주인은 단 한 명입니다. 심판원장 자격요건을 갖춘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