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의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金裕璨)씨가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전 시장의 '위증 교사' 의혹 등과 관련한 '2차 폭로'를 감행하면서 김씨 주장의 진실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전 시장측 역시 주호영(朱豪英) 비서실장의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김씨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지만 양측의 주장이 워낙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어 이번 공방은 '진실 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다만 김씨가 자신이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실제 증거력 있는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으로부터 위증을 대가로 나눠 받았다는 돈의 액수가 발표 때마다 달라지고, 돈을 전달했다는 당사자도 실제 전달 시점에 구속 수감돼 있었다는 반박이 제기되는 등 주장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회관 내 한 음식점에서 1시간 30여분 동안 진행된 이날 회견에는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어 세간의 관심을 반영했다.
김씨는 회견문을 낭독하면서 '3억원 거래설'과 관련 자신이 거짓 증언을 했다면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이종찬(李鍾贊) 전 국민회의 부총재에게 "위증해서 미안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기도 했다.
또 회견 도중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즉석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틀기도 했으나,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를 공개할 수는 없다"며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카세트를 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위증교사 및 대가지급 의혹 = 김씨가 이 전 시장에 대해 제기한 일련의 도덕성 관련 의혹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김씨는 회견에서 당시 이 전 시장 측이 재판 때마다 주면서 위증을 요구했다는 '예상 질문답변서'와 위증의 대가로 이 전 시장측으로부터 받았다는 1억2천50만원의 '수수 내역서'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재판 기간 이 전 시장이 현금 1억2천50만원을 당시 보좌관이던 J모, K모씨와 비서관이던 이광철씨를 시켜 자신에게 전달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공개한 내역서에 따르면 돈은 20여차례에 나눠 전달됐으며 특히 96년 11월부터 98년 5월 사이에는 이씨가 모두 8천500만원을 세 차례로 분산해 전달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측 주호영 비서실장은 이씨가 김씨에게 8천500만원을 전달했다는 기간에는 이씨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돼 있던 기간임을 확인했다면서 "김씨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이씨는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96년 9월 구속 수감돼 97년 3월 중순 출소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김씨가 명확한 해명을 하지 못한 것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김씨는 "10년전 일정이라 다소 착오가 있을 수 있다"며 "이광철 전 비서관의 구속 기간은 정확히 기억 못한다. 정리 과정에서 이 때쯤 받은 걸로 기억하고 정리한 것이지만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 실장은 '1억2천50만원중 이광철씨가 준 8천500만원을 뺀 나머지는 어디로 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그 부분은 확인중이다. 후보검증위에서 밝힐 것"이라고만 답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김씨는 이 전 시장이 거액을 전달한 목적이 위증을 강요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전 시장 측이 자신으로부터 유리한 진술을 얻어내기 위해 공판 때마다 미리 건넸다는 10쪽 분량의 예상 질문답변서를 기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질문 내용이 상대측(이 전 시장측)이 선임한 변호사의 질문 내용이다. 이 질의서가 나에게 넘어온다는 것은 위증교사를 받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서류가 이 전 시장측이 작성했다는 물증은 대지 못했다.
◇상암DMC 빌딩입찰 방해 의혹 =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내 초고층 빌딩 건설 사업에 김씨가 입찰하려 했으나 이 전 시장이 이를 고의로 방해했다는 의혹.
그러나 이 전 시장 측은 김씨의 회사가 애초부터 '자격 미달'이었고 모든 입찰 업체가 탈락했다는 등의 근거를 들면서 "음해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씨는 2003년 미국계 부동산 투자 및 중개네트워크인 NAI의 한국지사 대표를 맡아 상암동 국제비즈니스센터(IBC) 건설 사업에 입찰했으나 서울시가 당초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수의계약 방식을 국제경쟁입찰 방식으로 바꾸는 바람에 유찰됐고, 그 과정에 이 전 시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과의 구원(舊怨)을 문제삼은 이 전 시장의 "시장 재직시 행정권한의 남용과 횡포" 때문에 자신의 사업이 좌절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호영 비서실장은 "김씨는 입찰방식이 변경됐다고 주장했으나 애초 이 사업은 공개입찰로 추진됐고, 김씨의 회사는 입찰 보증금조차 내지 못한 자격 미달의 회사였다"고 반박했다.
주 실장은 "당시 김유찬의 '나이 아메리카 컨소시엄'을 포함, 입찰에 참여한 모든 회사가 유찰된 만큼 김씨의 회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이 전 시장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시 관련업무 책임자인 최령 전 서울시 산업국장이 '이 문제로 김유찬을 만났지만 사업 입찰 방식 변경을 언급한 바가 없으며, 김유찬은 일방적으로 96년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살해 협박 의혹 = 이 전 시장이 '화해'를 위해 찾아온 김씨에게 '살해 협박'으로 느낄 수 있는 폭언을 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지만, 당시 그 자리에는 이 전 시장과 김씨, 둘만 있었으므로 확인이 불가능한 대목이다.
김씨는 앞서 16일 회견에서 "이 전 시장은 98년 6월30일 서초동 사무실에 찾아온 나에게 " 왜 왔어 이 XX야. 너를 목에다가 돌을 달아 인천 앞바다에 (던져)죽이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내가 말렸다'고 말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주호영 실장은 "2002년 김씨 본인이 준비했던 자료에는 장소도 다르게 나와있고, (살해협박이 아닌) 훈계를 들었다고 기록돼 있다"며 "검증위에서 검증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3억 요구설' = 지난 96년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폭로 기자회견 동기와 관련, 김씨가 당시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 부총재에게 3억원을 요구했는지 여부를 놓고도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김 씨는 이날 회견에서 "96년 기자회견 후 있지도 않은 이 부총재 측과 3억원 거래설에 대해 '거래사실 있었음'이라고 법정에서 위증했다"면서 "이종찬 부총재측과 3억원 거래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해 줬다는 김대중(金大中) 당시 국민회의 총재의 추인설은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양심선언 전날인 96년 9월9일 오후 11시30분께 김대중 총재의 자택을 방문, 그 자리에서 김 총재로부터 '김유찬 동지와 같은 이의 의로운 행동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길 수 있다'는 취지의 격려를 받은 것이 전부이며, 3억원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특히 "회견(양심선언)의 순수성을 훼손시켜야만 이 전 시장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이 전 시장측 인사들이 허위증언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호영 비서실장은 "언론과 검찰 수사 등을 통해 확인된 사실조차 전면 부인하는 것"이라며 "김씨는 외국에 갔다가 공항에 들어오면서 연행돼 검찰로 직행했으며, 거기서 3억원을 요구했다고 진술했다"고 반박했다.
주 비서실장은 "당시는 이 전 시장측 누구와 만날 수도 없고 교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면서 "이와 관련, 김유찬은 96년 10월11일 이전에는 '이종찬측에 3억원을 요구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가, 10월17일에는 기자와 인터뷰를 통해 '검찰이 조작 발표했다'고 하는 등 필요에 따라 말을 바꿔왔다"고 주장했다.
◇녹취록 = 위증 교사 당사자로 지목되는 K모, J모씨 등 2명이 이 전 시장으로부터 '입단속' 종용을 받았다는 내용의 녹취테이프를 둘러싸고도 양측의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김씨는 이날 회견에서 전날 K, J씨와의 통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의 일부를 공개하고, 추후 한나라당 경선준비위원회에 녹취록과 테이프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마지막 통화 당시 이미 이 전 시장 측에서 깊숙이 손을 썼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면서 "K씨의 경우 여동생이 이 전 시장 캠프에서 주요 직무를 맡고 있는 사람의 부인이기 때문에, 여동생이 이 전 시장 측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공개된 통화 내역에는 명시적으로 압박을 종용받는다는 부분이 포함되지 않았고, 대부분 김씨의 주장이 주를 이루고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테이프에서 K씨는 김씨가 '지원사격'을 요청하자 "나도 일종의 압박을 많이 받아요"라고 했으며, 김씨가 "이 전 시장으로부터냐"고 다시 묻자 "그렇지. 나도 내 입장이 있으니 동생도 있고하니 그런데..."라고 답했다.
J씨는 "한나라당 중앙당 차원에서 '제2의 설훈'이라는 둥 하는 것은 부당한 공격"이라고 했으며, 김씨가 "13~15번 정도 우리가 만났더라"고 하자 "아니 그건 기억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 비서실장은 "김씨는 며칠전부터 위증 교사를 증빙할 관련자 녹취록을 확보한 것처럼 말해왔지만, 허위로 밝혀졌고 녹취 내용도 위증교사를 증빙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났다"면서 "녹취 시점 역시 1차 기자회견 전후에 확보한 게 아니라 한나라당이 자료를 요구하니 어제 다급하게 시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맞받았다.
주 실장은 "내용도 통화자 K씨는 김유찬의 유도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거의 동조해 주지 않았고, 대부분 김씨 일방적 주장만 녹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반박했다.
주 실장은 CBS라디오에 출연해서는 K씨와 J씨가 김씨의 회사에 근무했거나 근무중이라는 사실을 거론하며 "통화자는 김유찬 씨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고있다"며 이들 발언의 신빙성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반면 김씨는 세 사람간 '입맞춤' 가능성에 대해선 "전혀 아니다"며 "그분들은 내가 회견하는 자체를 전혀 모른다"고 부인했다.
◇배후설 및 이재창 의원실 근무경력 = 김씨의 이번 폭로와 관련한 '배후'와 관련해서도 양측은 엇갈린 공방을 벌이고 있다.
김씨는 "이 전 시장 측에서는 조직적인 플레이를 한다고 사실과 다른 공격을 하는데 대단히 유감스럽다"면서 "정인봉 변호사와는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몇차례 선거 현장에서 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10년만에 정 변호사에게 전화가 와서 굉장히 놀랐으며, 사무실에서 만나 96년 부정선거 질문을 했지만 깊숙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고 했으며, "김무성(金武星) 전 총장을 비롯해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 캠프 누구와도 만난 일이 없다"고 배후설을 일축했다.
반면 주 실장은 CBS라디오에 출연, "어거지가 아닌 것을 어거지라고 하는 것도 네거티브"라며 "정인봉 변호사의 행위, 김유찬의 폭로, 지지팬클럽 총동원령 등 전체적으로 볼 때 정인봉의 돌출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씨의 이재창(李在昌) 의원실 보좌관 채용과 관련해서도, 양측은 "이 전 시장측 개입으로 해고됐다"(김유찬), "이 의원은 당시 김유찬을 채용한 바 없다고 밝혔다"(주호영)며 각기 다른 주장을 펴고있다.
당사자인 이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내가 면접하고 적합하지 않으니까 안 쓴 것"이라며 "마치 내가 채용했다가 해고된 것처럼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매우 불쾌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