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최근 3년간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면서 이익잉여금으로 쌓아둔 법정적립금의 소진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으나 정부나 한은 차원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 대비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외환보유액 규모가 2천400억달러에 달하면서 내외금리차와 환율변동에 따라 한은의 수지 규모가 수조원단위로 급변동할 수 있는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된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한은은 회계연도마다 법인세 납부후 순이익의 10%를 법정적립금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정부의 일반세입으로 납부하게 돼 있다.
적립금은 10%를 초과해 쌓을 수도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재정경제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2000년 이후 정부가 이를 허용한 적이 없다.
한은이 흑자를 내면 적립금 규모가 커지지만 적자를 낼 경우 적립금으로 이를 보전하도록 돼 있다.
한은의 적립금은 한때 5조9천억원에 달했으나 2004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현재 적립금규모는 2조151억원으로 줄어든 상태다.
한은은 올해 1조2천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렇게 되면 적립금은 8천억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만약 2008년에도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게 되면 적립금이 고갈될 수 있다.
한은법에는 적립금이 고갈됐을 때 "예산회계법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정부가 보전한다"고 명시돼 있어 국민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어떤 절차를 통해 한은 적자를 보전할 것인지, 예산회계의 어떤 항목을 통해 적자를 보전할 것인지 등에 관해 구체적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으며 이 문제를 놓고 재경부나 기획예산처, 한은 등이 심도있는 협의를 진행해본 적도 없다.
한은 관계자는 "적립금이 고갈되는 상황을 가정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적자보전 방안에 대해 세부절차를 마련하려는 노력도 없었다"면서 "그러나 한은의 외화자산운용규모가 커지고 통화안정증권 이자부담도 가중되고 있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구체적 실행절차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일각에서는 한은이 흑자를 낼 때 쌓을 수 있는 법정적립금 비율을 높여 유사시에 적절히 대비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한은도 법정적립금 최저비율을 현재의 순이익의 10%에서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은이 보유한 280조원의 자산 가운데 200조원이 해외유가증권에 투자돼 있어 국제금리가 하락하면 유가증권 투자수익이 줄어들지만 한편으로 환율방어 과정에서 150조원대로 누적된 통화안정증권 이자지급액이 연간 6조원 가까이 커지면서 최근 몇년간 한은의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수년간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하락도 한은 적자 누적을 부추겼다.
이처럼 운용자산과 통안증권 규모가 커지면서 환율변동에 따른 수지 변동폭도 함께 커지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에 대비해 적립금을 쌓을 수 있을 때 충분히 쌓아 둬야 한다는 것이 한은의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한은이 흑자를 낼 때 거둬갈 수 있는 국고귀속분은 재정운영에 적잖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를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한은은 그러나 "한은이 아무리 정책수행을 잘 하더라도 내외금리차와 환율변동에 따라 수지가 얼마든지 나빠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적립금 고갈로 인해 중앙은행으로서의 대외신인도에 타격이 초래되지 않도록 적절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