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의 과실로 대규모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해 은행 등 금융기관이 손해를 입은 경우, 회계법인의 과실과 은행의 손해 사이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지금까지 분식회계와 관련해선 은행들은 회계법인에 책임을 묻는 반면, 회계법인들은 "은행은 회계감사보고서 뿐만 아니라 회사의 거래실적과 전망 또는 기업체의 수익성 등 다른 요소도 고려해서 돈을 빌려준다"며 쌍방과실을 주장하던 터여서 이번 판결은 의미가 크다.
대법원은 4일 "우리은행이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대우전자 분식회계와 관련해 42억90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해 달라는 내용의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관련 이같은 이유로 사건을 기각시킨 서울고등법원에 파기환송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대우전자는 지난 1997년 사업연도 재무상태가 자산이 3조2283억6600만원인데 비춰 부채 4조1254억6400만원으로, 자기자본이 완전히 잠식되고 당기순손실이 1조6701억 5300만원인 상태.
그러나 이 회사는 자산 등 총1조7116억2800만원 상당을 허위로 부풀려 계상하는 방식으로 재무제표를 분식 처리한 결과 자산 4조636억1300만원과 당기순이익 414억7500만원인 건실한 기업으로 꾸며졌다.
대법원은 판결문(2005다28082. 2007. 1. 11)에서 "감사보고서는 정확한 재무상태를 드러내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로서 일반에 공시, 기업체의 신용도와 상환능력 등의 기초자료로서 회사의 신용등급평가와 금융기관 여신제공 여부 결정에 중요한 판단근거가 된다"고 판시했다.
외부감사인에게 중요한 감사절차를 건너뛰거나 소홀히 한 감사상의 과실이 있었다면, 분식회계사실을 밝히지 못한 과실의 결과로 기업체가 적정한 신용등급을 얻었고 그에 따라 금융기관이 여신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특히 "분식이 제대로 밝혀지면 금융기관이 여신을 제공할 때 고려하는 재무제표 외의 고려요소, 즉 ▲상환자원과 사업계획의 타당성 ▲채권 보전방법 ▲거래실적과 전망 ▲수익성 ▲사업성과 ▲기업분석 등도 모두 극히 저조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회계법인들의 "재무제표에 나타난 기업체의 재무상태 외의 요소들이 함께 여신제공에서 고려되는 만큼, 감사보고서만을 토대로 해서 여신제공을 결정했다는 은행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을 대법원이 정면 반박한 셈.
대법원은 결국 "대규모 분식을 금융기관이 알았더라면 여신을 제공하지 않았을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재무제표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상의 과실과 금융기관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되지는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회계법인들이 "(금감원의)대우전자 분식회계 심사결과 발표시점에서는 우리은행이 실사결과의 차이가 외부감사인의 주의의무위반에 해당하는지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회계법인이 부실감사에 따른 책임시효가 금감원의 실사결과 발표인 99년 11월4일부터 계산해 민법상의 단기소멸시효인 3년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 3년의 시작을 실사결과 발표 뒤인 증권선물위원회가 외부감사인 징계건의나 징계처분이 이뤄진 때로 봐야한다는 것.
한편, 이와 관련 우리은행 소송대리를 맡았던 '법무법인 푸른' 김상훈 변호사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앞으로 회계감사인들이 감사보고서를 작성할 때 보다 신중을 기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