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특정부처 출신의 관련기업 즉시 취업은 안된다'던 원칙이 무색하게 외관상 공모절차를 밟았던 공기업 인사에서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 등 힘있는 경제부처 출신 전직 관료들이 모두 취업이나 연임에 성공했다.
◇ 직전 차관 3명 모두 CEO 입성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의 후임자를 물색하던 회장추천위원회는 지난 6일 예상대로 박병원 전 재경부 제1차관을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박 차관이 회장직을 맡으리라는 것은 이미 그가 사표를 냈을 무렵부터 기정사실화 됐었다.
연임을 시도하던 황영기 회장의 면접 탈락과 유력한 경쟁자이던 전광우 딜로이트 코리아 회장의 국제금융대사 임명으로 일찌감치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박 회장 내정자에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김종갑 전 산자부 1차관이 하이닉스반도체의 대주주인 채권단에 의해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추천됐고 이어 7일에는 이원걸 산자부 2차관이 국내 2위의 기업집단 총수인 한국전력의 차기 사장 후보로 내정됐다.
이들 외에도 지난달 22일에는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지내다 사표를 낸 유재한씨가 주택금융공사 사장에 내정됐고, 역시 '모피아'(재경부 관료출신) 출신인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7일 금융계 출신의 유력한 경쟁자를 제치고 연임에 성공했다.
◇ '너무하다' VS '유능한 적임자'
고위관료들의 연이은 '100% 취업성공기'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따가운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퇴직 직후 직무 관련분야의 취업을 불허하는 윤리규정상 이들의 CEO 입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자윤리심사위원회가 이들 관료의 취업에 직무관련성이 전혀 없거나 관련성이 있더라도 특별한 예외 사유에 해당돼 재취업에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지만, 관련 기업들은 모두 불과 1∼2개월전까지 새 CEO 후보들이 근무하던 부처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경실련)의 조사결과 2003년 3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 6개 기관 3급 이상 퇴직 공무원 194명 가운데 업무관련성은 있지만 취업이 가능한 지를 살펴보는 취업심사를 받은 건수는 22건, 이중 사후 해임조치가 이뤄진 것은 2건에 불과했다는 점은 취업제한제도가 지나치게 성긴 그물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노조 측의 반발도 만만찮다. 당장 박병원 회장의 취임을 앞둔 우리금융에서 우리은행 노조가 파업에 나설 태세이며, 발전노조 역시 발전 민영화나 배전 분할 등에 대한 과거 정책을 문제삼아 이원걸 사장 내정자의 공모 지원 당시부터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정부 부처나 당사자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런 비판에 대해 "억울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해당 인사들이 모두 자기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과 경영 노하우를 가진 인재들이어서 자리를 차지하는 데 무리가 없으며 여기에 새롭게 전직 관료들을 CEO로 맞게 된 기업들이 대부분 대정부 관계에서 해야할 일이 많은 상황이라는 '명분'까지 있다는 게 이들의 변이다.
아울러 이번 공모에 나선 지원자들 가운데 민간기업에서 검증된 유능한 경영자가 많지 않았다는 점도 관료들이 '낙점'을 받는데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계 인사는 "공모 때마다 관료 내정설이 파다한 상황에서 유능하고 검증된 민간 실력자들이 재경부 등 힘있는 경제부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