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내려라 vs 정유사 마진 때문"…결론 못내 소비자만 '울상'
최근 고유가의 원인을 둘러싸고 정부가 정유업계의 높은 마진을 문제삼자 업계에서는 즉각 반박에 나서는 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11일 대한석유공사 자료를 인용해 지난 5개월동안 휘발유의 소비자가격이 8.7% 늘어났는데, 유류세는 1.2%가 증가한 반면, 정유사의 휘발유 정제마진은 59.0%가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기름값이 오른 원인이 유류세 때문이 아니라 정유사의 '마진 챙기기' 탓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유류세 인하에 대한 압력을 정유사의 마진으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지난 2004년 고유가 논란 당시에도 정부는 유류세 인하가 정유사의 폭리로 인해 효과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정유업계의 가격담합조사까지 나섰다. 당시 정유사들은 국제유가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기름값을 소폭 내린 바 있지만, 이 마저도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원상복귀됐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소비자들은 유류세를 인하해 기름값을 내려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정부는 정유사의 유통구조 때문에 세금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 재경부-정유업계 기름값 '마진' 공방
11일 재경부는 '휘발유 유통 마진 추이'라는 대한석유공사 자료를 발표하고, 지난해 12월 휘발유 소비자판매가격이 ℓ당 1415원에서 지난 5월 1538원으로 8.7% 늘어났다고 밝혔다.
특히 이 기간동안 정유사의 휘발유 정제마진은 ℓ당 144원에서 229원으로 59.0% 상승한 반면, 유류세는 ℓ당 873원에서 884원으로 1.2% 늘어나는데 그쳤다는 게 재경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석유협회에서는 "재경부가 발표한 정제마진은 휘발유 유통마진이 아니라 정유사 휘발유 출하가에서 원유도입가를 뺀 것에 불과하다"며 "정유사의 휘발유 출하가는 관세, 석유수입부과금, 운임, 품질보증비, 국내 유통비용 등이 포함된 가격"이라고 반박했다.
석유협회는 "통상 정제마진은 국제 석유제품과 원유 가격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휘발유뿐만 아니라 모든 유종을 평균해 산출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휘발유는 정제마진이 플러스(+)로 나타나지만 생산비중이 30% 정도 차지하는 중유의 경우에는 역마진(-)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에서는 정제마진 산출에서 역마진이 발생하는 중유를 빼고 휘발유만으로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자료를 발표해 재경부가 유류세 인하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선을 정유사 책임으로 돌리려 한다며 발끈하고 있다.
□ 2004년 여름에는 무슨 일이?
유류세 인하에 대한 국민 여론은 지난 2004년에도 들끓었다. 2004년 8월 당시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타면서 국내 유류가격이 급등하자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
그러나 당시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현 코스콤 사장)은 "국내 유류가격은 국제유가 상승과 달리 정유사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상되는 측면이 많다"며 "고유가에 편승한 주유소들이 마진율을 너무 올려 유류가격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前세제실장의 발언 직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유사들의 유류가격 담합인상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으며, 정유사들은 당시 국제유가 상승세가 주춤했다는 이유로 앞다퉈 유류가격을 인하했다.
잠시 기름값이 내려가는 듯 했지만, 한달 만에 정유사들은 다시 국제유가 상승분을 반영해 국내 유류가격을 원래대로 돌려놨다. 이후 유류세에 대한 논란은 정유사 폭리 문제에 가려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 '살인적' 기름 값 해법은?
재경부는 정유사의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오는 7월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2%P 인하해 국내외 업체간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를 유도하기로 했다.
다만 이 방안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수입석유의 점유율이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수입석유 점유율은 0.8%에 불과해 사실상 국내 정유사와의 경쟁이 사라졌기 때문에 관세율을 인하하더라도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힘들기 때문.
특히 소비자들은 과도한 유류세 부담을 줄여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반면, 재경부에서는 "유류 관련 세금을 인하하면 세수가 크게 감소하지만 가격인하 효과 자체는 여러 중간단계를 감안할 때 불확실하다"며 유류세 인하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기름값을 내릴 경우 경제활동이 보다 활발해지기 때문에 전체 세수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휘발유가격 대비 세부담은 57%로 미국(17%)과 일본(49%) 등에 비해 높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가격은 우리나라가 100일 경우 미국은 17, 일본 31, 독일 46 등으로 국내 휘발유가격의 체감 부담은 더욱 높은 상황.
이처럼 유류세율을 내릴 명분이 충분함에도 불구, 정부는 실효성이 적은 수입석유의 관세율을 건드려 유류가격구조를 개선했다는 생색을 내려고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국내 기름값이 높은 원인으로 국제유가 상승과 과도한 유류세 부담, 정유사의 유통구조 등이 가장 많이 꼽히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기름값 상승은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유류세와 정유사의 유통구조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
일단 단기적으로 유류세율을 인하해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정유사의 가격투명화 및 경쟁촉진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유통구조 개선에 나서는 것이 최근 고유가로 인한 원성(?)을 줄일 수 있는 정부의 최선책이라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