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몰랐던' 감사원…"국세청이 통보안해"
감사원에서 기각결정을 내린 조세불복 사건이 법원에서 인용 판결이 났지만 이를 알지 못한 감사원이 비슷한 내용의 조세불복 사건에 대해 '당초의 논리'를 고집하며 또 기각결정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와관련 감사원은 "법원 판결내용은 사건의 관계당국인 국세청이 감사원에 통보를 해야하는데, 국세청이 판례 통보를 누락시킨 것 같다"며 국세청을 탓했다. 이어 감사원은 "앞으로는 비슷한 내용이 감사원에 심사청구가 제기되면 관련 법원 판례를 참조하겠다"고 말했다.
20일 복수의 조세전문가들은 조세일보가 지난 16일 보도한 [박카스는 되고 드럼통은 안되고]라는 제하의 기사와 관련 "과거 감사원이 비슷한 사건을 기각했다가 법원에서 뒤집혀졌다"며 "감사원의 이번 결정은 법원 판결을 몰랐거나 법원을 무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의정부지방법원과 감사원 등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경기도에서 PVC통 도·소매업을 하는 윤某씨가 지난 2002년과 이듬해까지 세척후 재사용이 가능한 PVC통을 사들이고, 그 매입세액 6101만원 상당을 매출세액에서 공제하고 부가가치세를 확정 신고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세청은 윤씨의 PVC통이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의제매입세액 공제대상으로 정한 재활용폐자원 중에 폐합성수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봐 2004년 4월 윤씨로부터 가산세를 포함한 부가가치세 7858만원을 경정·고지했다.
이에 대해 윤씨는 "재활용폐자원 등에 대한 의제매입세액 공제의 입법취지는 재활용폐자원 등의 수집활동이 보다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세제지원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파손 등으로 재사용이 불가능한 PVC통뿐만 아니라 재사용이 가능한 것도 공제대상이 돼야 한다"며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냈다.
감사원은 "매입세액 공제대상인 폐자원은 파손·절단·기타 사유로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며 "본래 용도대로 재사용이 가능한 윤씨의 PVC통은 매입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재활용폐자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윤씨의 청구를 기각(감심 2005-54호, 2005. 6. 24)했다.
이후 윤씨는 사건을 법원으로 들고 갔으며 지난해 3월 14일 의정부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여상훈)로부터 "국세청의 과세결정은 잘못됐으니 과세처분을 취소하라"는 승소결정을 이끌어냈다.
재판부는 판결(2005구합3429. 2006. 3. 14)에서 "실질적으로 별도의 처리과정 없이는 재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의 PVC통을 폐수배출시설을 갖추고 불림·세척 등의 과정을 거쳐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폐자원의 재활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재활용폐자원은 파손·절단·기타사유로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국세청과 감사원의 판단에 대해선 "조세법규의 해석은 엄격하게 해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확장해석이나 유추해석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PVC통을 취득할 때 통에 남아있는 화공약품 등의 내용물 때문에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할 수 없어서, 폐수시설을 갖추고 약품을 사용해 PVC통을 불리고 세척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재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폐자원의 재활용으로 봐야한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한 조세전문가는 이와 관련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당시 관할 과세당국인 중부지방국세청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했다가 지방법원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지난해 8월 항소를 포기했다"며 "이는 스스로 과세에 무리가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해 3월 법원 판결이 있은 후 1년 4개월이 지난 2007년 7월 12일 감사원이 비슷한 사건(관련기사 : [박카스는 되고 드럼통은 안되고])에 대해 과거 논리를 똑같이 반복하며 법원결정과는 정반대의 기각결정을 내려버린 것.
감사원은 "폐드럼통도 의제매입세액공제 대상이 돼야한다"는 심사청구에 대해 "매입세액 공제대상인 폐자원은 파손·절단·기타 사유로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할 수 없어야 한다"며 기각결정(2007년 감심 제71호. 2007. 7. 12)을 내렸다.
감사원은 특히 "감사원은 이미 같은 취지에서 2005-54호, 2005. 6. 24. 결정에서 폐PVC통을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이 공제되는 재활용폐자원에 속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며 감사원의 심사결정에는 일관성이 있음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이같은 결정은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이미 1년 전에 감사원결정 내용과는 180도 달라진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몰랐고, 국세청이 의정부지법의 판결에 불복하는 항소를 포기한 것조차 몰랐기 때문에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법원 판결내용은 국세청이 감사원에 통보를 해주고 있는데 이따금씩 누락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심사과정에서 관련 판례를 참조하지 못했지만 또 비슷한 내용이 들어오면 그 땐 법원 판례를 참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조세전문가들은 "감사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면 이는 곧바로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할 공무원들에게는 판단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며 "법원과 국세청도 인정하는 논리를 감사원만 부정한다면 애꿎은 납세자만 고통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