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깎으려는 상인심리 이용 세금 가로채
국가가 멍석 깔아준 제2의 남대문 탈세 사건
국내 최대의 축산물 유통시장인 서울 마장동 우(牛)시장에서 무려 27년간 탈세를 조장해온 납세조합장이 구속됐다. 마장동 일대에서 영세상인들을 상대로 군림해 온 이른 바 '마장동 대통령'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11일 조합원들의 세금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수억원을 가로채고 허위 매출전표를 발행하는 등 탈세를 일삼아 온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유통시장 납세조합 조합장 강 某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및 조세범처벌법 등에 따라 구속하고 정 某씨 등 직원 4명을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시장상인인 조합원들이 세무신고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적은 점을 이용해 상인들의 도장과 고무인을 날인하는 방법으로 지난 2005년부터 2006년까지만 187억원의 허위매출전표를 작성해 왔다.
또한 980명의 조합원들에게 징수한 세금을 세무서에 납부하고 환급받은 세액은 돌려줘야 하는데도 이를 개인 비자금 계좌에 넣어두는 방법으로 지난 2001년부터 올해 5월말까지 15억원의 환급금을 횡령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장동 우시장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시장에서도 이와 같은 조직적이고 관행적인 세금계산서 허위작성과 횡령이 있을 수 있다"며 "각종 납세조합의 뿌리깊은 관행을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가가 멍석 깔아준 제2의 남대문 탈세 사건
이번 사건의 발단은 상인들의 세금을 대납해주는 조합을 합법화한 지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경부는 동대문 의류상가 등과 같이 동종의 업체가 밀집된 상가를 대상으로 공평한 과세와 성실납부 유도를 위해 비영리단체인 '납세조합'의 설치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소상공인들에 대한 세금징수가 어려우니 대표기관을 정해 납세를 대행토록 한 것.
현행 소득세법과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농·수·축산업 판매업자 등은 납세의무자가 20명 이상만 되면 납세조합을 결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납세조합은 조합원들로부터 소득세를 징수하고 영수증을 교부해야 하는 권한과 의무를 갖게 됐다.
규정대로라면 조합원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세금을 산출해 납부해야하지만 강씨의 경우 조합원들의 도장을 걷어 가짜세금계산서를 발행했고 조합원들에게는 '적당히 싼' 세금을 부과했다.
여기에는 세금을 조금이라도 적게 내려는 소상공인들의 욕심도 한몫 했다.
상인들은 강씨를 통해 세금을 내면 세금을 깎을 수 있다고 믿었고, 강씨는 이를 이용해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하고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10%의 납세조합공제액도 따로 챙겼다.
경찰 관계자도 "사실상 조합과 상인 모두가 공범"이라며 "세금을 적게 내려는 입장과 이를 이용해 돈을 챙기려는 양쪽의 이익이 합치돼 발생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상인들끼리 가짜세금계산서를 발급해줘 수천억원대 탈세를 조장하다 지난 1월 그 실태가 드러난 남대문시장 자료상 적발사건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빙산의 일각이다.
□ 20년간 탈세에 세무서는 뭐했나
20년 넘게 탈세와 허위세금계산서가 발행되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관할 세무서가 아닌 경찰에 의해 적발됐다.
경찰은 강씨의 횡령부분에 초점을 두고 수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허위세금계산서 발행을 통한 조세포탈혐의도 적발된 것.
경찰에 따르면 조세포탈 혐의에 대한 수사는 세무서의 고발이 있어야 하지만 이번 사건이 있기 전까지 마장동 우시장에 관련한 조세포탈사건 고발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10일 전 쯤 세무서에 우리가(경찰서) 고발을 요청해 고발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상인들의 소득세가 제대로 신고되지 않고 거둬들여지지 않았으나 세무서에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
관할 세무서인 성동세무서 관계자는 "조사는 지방청에서 지시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검찰조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관련한)따로 조치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