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에서 과연 호남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호남이 압도적으로 밀었던 후보는 대통령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 호남의 힘으로 대선 결승점을 통과했다는 점에서 이번 3번째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
호남은 앞선 두 차례 대선에서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모두 DJ(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전략적 투표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데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는 점에서 29일로 예정된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을 통해 이곳 민심이 어떤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지 주목된다.
호남의 중핵도시 광주와 전남 일원의 유권자 의식도 이런 관측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신당의 광주.전남 경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은 과거 처럼 대놓고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무관심한 것 같기도 하고, 무색무취해진 것 같기도 할 정도로 그간 호남의 정치적 편향성이 상당히 완화된 느낌이다.
일단 완연히 차분해진 지역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18일부터 이틀간 만나본 이 지역 유권자들은 대부분 29일에 경선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고 답할 정도였다.
신당 광주시당 관계자는 "경선 투표율이 워낙 낮어불고 조직선거로 가다봉께 아무래도 분위기도 안 뜨고 대선 치르기도 전에 당에 사단이 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많이 합디다"라며 "5년 전에 비하면 (열기가) 3분의 1도 안 돼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조선대 공대 4학년 임모(26)씨는 "주변에 친구들하고 아예 그런 대화 자체가 없더라구요. 취업준비하느라 정신도 없고 요새 축제기간이라서 더 그런 것도 있고..."라며 "누가 되든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갈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열기뿐아니라 시각도 상당히 바뀐 듯 했다. 신당 경선후보 중 유일한 호남출신 후보인 정동영 후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많았고, 한나라당 전력이 있는 손학규 후보를 선호하는 평가도 적잖게 나오는 등 종전과 같은 민심의 균일화는 크게 깨져있었다.
물론 정 후보의 대세를 받아들이는 기류는 분명한 흐름을 타고 있다. 류동훈(36) 광주.전남 행복발전소 사무처장은 "분위기를 보면 정동영이 지금 앞서는데 그 대세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손학규에 대한 지지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적극성이 좀 떨어지고 자기가 '손학규 전도사'가 되겠다고 하고 돌아다닌 사람은 별로 없었거든요"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한 뒤 "손학규 갖고 본선에서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뭣하러 올인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장성군 교육청에 근무하는 김희근(40)씨는 "밥 먹음서 하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아무래도 정동영쪽이 더 많은 것 같습디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에서 넘어와서 명분이 좀 없다 그런 얘기도 있고..."라고 말했다.
영암의 중소 건설회사 중견간부인 서수룡(41)씨는 "동원이다 몰표다 해서 사람들이 (신당경선에 대해) 안 좋게 얘기들 합디다"라며 "정동영이 더 낫다고 봐야제. 손학규 갖고 (본선에서) 된다는 보장도 없응께"라고 정 후보 쪽에 점수를 줬다.
그러나 손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전남대 법대 민병노 교수는 "정 후보는 조직을 갖고 있고 손 지사는 5월 이후에 시작하다 보니 결속력이나 충성도가 떨어지는 측면은 있다"면서 "하지만 여론주도층 사이에서는 손 지사에 대한 평가가 앞서는 게 명확하고, 정동영으로 본선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의견이 많아서 그런 생각들이 일반에 퍼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전남대 정문 앞 안경점의 30대 사장은 손학규가 더 낫다고 주장했다. 왜냐고 묻자 "딱히 흠이 없응께. 그래도 딴 사람들보다는 더 낫고 무난해보입디다. 한나라당때 얘기 갖고 자꾸 꼬투리 잡는디 인자 시대가 달라졌고..."라면서 "정동영은 이번에도 (선거인단) 동원했다고 시끄럽든디 벌써부터 그런 말 나오믄 쓰겄소"라고 되물었다.
택시기사 박중진씨는 "우리는 (경선에) 신경 안 쓰요. 관심 가지믄 머한다요"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더니 이내 "그래도 손학규가 낫지 않겄소. 서울 경기에서 표가 많이 나온다고 하든디"라며 "정동영은 여그서 이기고 전북에서 몰표 나와봤자 본선에서 될랑가"라며 정 후보의 본선경쟁력에 의문부호를 찍었다.
박씨는 경선 결과에 대해서는 "까봐야 알제. 정동영이 충북에서 몰표 나올지 누가 알았다요"라고 반문했다.
자체적으로도 호남을 열세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는 이해찬 후보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류동훈 사무처장은 "호남 고속철 문제로 주민들 반발심이 있고 노무현(盧武鉉)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있어서 여기서는 이 후보가 약한 편"이라고 말했다.
호남의 눈높이는 경선 이후와 본선 사이의 범여권 단일화에까지 맞춰져 있었다. 민주당 후보,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등과의 극적인 단일화 가능성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광주의 한 고교교사 박모(46)씨는 "판세를 보믄 정동영이 될 것 같은디 문국현씨하고 잘 해봤으면 좋겄다, 이렇게 생각하제라"라며 "지금 이명박은 신정아 뒤에 숨어있고 해서 영 싸움이 안 되는디 문국현씨가 참신하고 해서 단일화가 되면 바람이 좀 불 것이요"라고 말했다.
농협 여수시지부에 근무하는 S씨는 "솔직히 신당이라고 하지만 모두 열린우리당이라고 생각한다"며 "문국현씨나 민주당 후보하고 단일화 과정을 거치면 관심을 좀 끌지 모르지만..."이라며 말을 아꼈다.
과거 호남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여수의 주부 김모(34)씨는 "지금 신당 후보로는 이명박 후보하고 게임이 안되고, 단일화 과정에서 호남민심을 대표하는 인물이 나와서 맞붙으면 가능성이 있을까 모르겠다"며 "어쨌든 지금 봐서는 한나라당이 유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순천시 공무원 M씨는 "신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하고 단일화를 하더라도 이명박 후보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 같다"며 "이 후보는 중년층 이상에게 현대건설 사장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옛날에는 무조건 민주당 민주당 했지만 요새 여그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혀요"(안경점 사장)라며 달라진 민심을 전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광주 중흥동에서 만난 60대 과일노점상 아주머니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테레비 볼 시간도 없응께 잘 모르지라"라며 "우리 아저씨는 이번에는 이명박이 된다고 하든디, 모르지라 뚜껑 열어봐야 알제"라고 말해 여전히 유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호남표심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