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곧바로 해명을 내놓았지만 이 기사로 인해 이 날 하루 종일 국세청의 분위기는 어수선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저녁나절 그럭저럭 수습이 된 모양인지 6시30분이 조금 넘어서면서부터 국세청 주요 간부들과 직원들이 하나 둘씩 퇴근길에(혹은 야근 전 저녁식사)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날 수송동 국세청사 정문의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국세청사 정문 앞에 퇴근길에 오른 직원들 사이사이로 수상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뛰었습니다.
한 걸음 밖에는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정문 앞에 모여 있는 이들은 몇 몇 언론사의 사진기자들이었습니다. 청사 앞 금속 조형물 앞에는(주정차 금지구역이었습니다) 한 언론사의 취재차량이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 날 수사축소 의혹 보도와 관련해 국세청장의 사진을 찍으라는 '특명'을 받고 일명 '뻗치기'를 하고 있는 기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국세청장이 퇴청길에 오르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기자들과 퇴근길을 재촉하는 직원들 틈바구니에 청사 정문 앞을 '감시'하듯 서 있는 직원들도(청사 방호원들과 함께) 눈에 띄었습니다. 대부분 국세청 총무과와 감사관실 직원들이었지요.
퇴근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정문 앞에 서 있는지 몇 몇 직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퇴근은 안하고 왜 여기에 서 있는 것인가?"
직원들의 대답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그냥 내려가 보라고 해서 내려와 있는 것이다", "손님이 오시기로 해서 마중 나온 것", "청사 정문 앞이 시끄럽다고 해서 한 번 내려와 봤다", "출입증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청사에 진입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내려왔다."
이들의 해명은 당시의 상황에 비춰볼 때 왠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요. 이 날 오전 국세청장과 관련한 의혹보도가 나갔다는 점, 빗줄기 속에 때아닌 사진기자들이 퇴청하는 전군표 국세청장의 모습을 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 등등.
안 그래도 언론보도에 심기가 상할대로 상한 전 국세청장이 퇴청길에 기자들로부터 봉변(?) 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직원들을 배치한 것 같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세청은 이 날 오전 언론보도와 관련해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사실과 다른 보도'라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해명자료를 통해 전 국세청장은 한 점의 '의혹'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고 또 내부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로 분위기도 수습된 마당에 기자들이 전 국세청장의 사진을 찍겠다고 나타났으니 국세청으로서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이 됩니다.
이 날 사진기자들과 국세청 직원들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은 7시30분이 다 되어서야 '조용히' 끝이 났습니다. (어느 시점인지는 몰라도)전 국세청장이 이미 국세청을 나섰기 때문이었습니다.
국세청장의 검은색 승용차가 정문 앞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던 사진기자들은 국세청장이 '홀연히' 퇴청하는 바람에 한 컷도 잡아내지 못한 채 국세청사에서 철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각, 빗줄기는 더 거세져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