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이 심상치 않다. 원화 강세와 유가 폭등, 금리 상승 등 이른바 `3高'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장기침체를 벗어나 가까스로 회복세에 접어든 한국경제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수출이 호조를 유지하면서 경상수지가 흑자기조를 이어가고 있고 산업활동 동향이나 주가 등의 지표도 양호한 흐름이어서 아직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대외 변수의 악화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체력으로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면서 지금까지 보다 앞으로의 추이를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유가폭등에 환율까지..악화되는 대외변수
하락세를 보이던 원.달러 환율은 31일 907.0원으로 거래를 시작한 뒤 급락해 장중 한때 800원대로 내려앉으며 900원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동안 원.달러 환율은 불안한 모습속에서도 당국의 개입 등에 힘입어 900원대 초반을 유지하며 버텨왔으나 이날 한때나마 900원선이 붕괴됨으로써 `환율 800원대'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손성원 미국 LA한미은행장은 전날 한 세미나에서 "달러화 약세는 국제적인 문제이며 경제 펀더멘털로 보면 원.달러 환율은 벌써 900원선이 깨졌어야 했다"면서 "환율 800원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최근의 환율 하락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데다 달러 약세가 장기화되고 있어 단기간에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의 신민영 연구위원은 "서브프라임 문제에 미국 금리인하 가능성까지 겹쳐 약달러 추세 예상이 굳어지면서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면서 "환율 하락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다"고 지적했다.
환율의 급격한 하락은 무엇보다 수출로 먹고사는 국내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를 부추겨 `수출은 잘돼도 남는 게 없는'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좋은 제품을 열심히 만들어 해외에 팔아도 수지타산을 맞춰보면 물건 팔아 번 돈을 환율 때문에 고스란히 앉아서 까먹는 일이 비일비재해진다는 얘기다.
수출 비중이 70%가 넘는 현대차는 원화값이 10원 오르면 연간 매출손실이 1천200억원 정도 발생하고,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이익이 1천200억원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최근 국제유가가 급상승해 또 다른 오일쇼크가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기업들이 느끼는 대외악재의 악화 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한탄이다.
◇ "아직은 감당할 체력 있다"
일시적으로 대외변수들이 악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우리 경제가 감내하지 못할 만한 수준은 아닌 만큼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환경이 악화된 만큼의 비용은 치러야겠지만 우리 지갑에는 이를 감내할만한 자금력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동철 박사는 "원 달러 환율은 내려갔지만 유로와 대비해서는 올라갔고 유가도 상승의 원인이 세계경제 호조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가 상승은 분명 악재이고 그로 인해 기업이나 소비자 등 누군가는 반드시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지금 상태라면 결정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면서 "세계경제에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는만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9월 경상수지 흑자가 24억2천만달러로 연중 최대규모를 기록하면서 올해 전체로 흑자기조가 확실시되는 점이나, 아직까지 산업생산지수가 증가세를 보이는 등 생산과 소비가 증가세를 유지하는 점은 위기감을 덜어주는 요인이다.
더구나 올들어 진행된 원화의 강세는 2005∼2006년의 경우처럼 다른 통화들보다 절상률이 높았던 `나홀로 강세'가 아니라 다른 통화와 비교할 때 절상률이 높지 않은 수준이다.
또 국내 전체수출 중 미국과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30% 중반대에서 최근에는 약 18%까지 떨어지는 등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낮아져 과거만큼 원.달러 환율 하락의 충격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권순우 연구위원은 "환율은 그동안 강세를 유지했으니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유가도 어느 정도 오르면 투기자금이 이익실현에 나설 것"이라면서 "이런 변수들이 추가로 크게 악화되지 않고 다시 안정을 찾는다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들 대외변수의 현 수준은 국내 경제가 크게 타격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면서 앞으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최근 발표된 3.4분기 국내총생산(GDP)을 봐도 경제가 위축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현 단계에서 내년 성장률 목표치(5%)가 영향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