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바뀐 세법 간과한 출제 오류, 정부 과실"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잘못 출제된 한 문제로 인해 낙방한 수험생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불합격 취소와 함께 각각 50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5일 서울고등법원에 따르면 지난 2004년 2월 실시된 제39회 공인회계사 자격 1차 시험에서 김모씨 등 8명의 수험생들은 합격기준을 채우지 못해 같은 해 4월에 모두 불합격 처리됐다.
김모씨의 경우에는 평균점수가 합격기준인 60점 이상이었지만 세법개론 과목에서 37.5점을 얻어 과목별 기준점수인 40점에 미달해 탈락했으며, 다른 7명은 평균점수가 59점대로 아깝게 불합격 처분을 받은 것.
그러나 이들은 당시 세법개론 과목의 1책형 33번 문제(2책형 31번)가 잘못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간이과세자가 부가가치세 확정신고에서 예정신고세액 등을 감안한 차감납부세액을 계산하는 문제였는데, 2004년 당시 세법개정으로 인해 간이과세자 예정신고 자체가 폐지됐기 때문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공인회계사시험위원회(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의 출제위원을 비롯한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등에서는 "개정된 세법에 의하면 정답이 없지만, 문제에 주어진 자료를 이용하면 정답이 나온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반면 서울행정법원에서는 "법 개정을 간과한 출제오류에 대해 전제조건을 내세워 응시자에게 주어진 답 중 상대적으로 출제의도에 더 적절한 답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불합격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인해 재정경제부 장관은 김모씨 등 8명에 대해 합격처분을 내리고, 이후 실시되는 공인회계사 제2차 시험에 2회에 걸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김모씨 등은 다시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 차원에서 2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9민사부는 판결문에서 "재정경제부 장관의 직무수행상 과실로 위법하게 행해진 시험 불합격 처분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며 "수험생들의 나이와 합격처분 경위 및 기간 등을 참작해 위자료 액수는 500만원씩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와 관련해 "정부는 합격처분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입은 손해는 실질적으로 보상됐다고 주장하지만, 불합격처분 후 1년 6개월 남짓 후에 이뤄진 합격처분만으로 수험생들이 입은 손해가 보상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법원은 정부에 대해 시험의 불합격처분이 내려진 2004년 4월 23일부터 판결 선고일인 2007년 11월 22일까지 민법에서 정한 연 5%, 23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