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직한 회계가 최우선 과제다-김광윤

최근 6월 29일자 언론보도에 의하면  매출액기준으로 세계3위의 전기/전자회사인 독일 지멘스그룹의 하인리히 폰 피어러회장이 미국기업들에 대하여 의미심장한 충고를 하였다. "미국기업은 회계를 좀더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지금 미국 경제의 위기는 미국 기업의 분식회계가 발단이며, 빨리 투명한

회계시스템을 갖춰 윤리경영으로 돌아가야 주식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이것은 2001년 말에 파산 신청한 미국 7대기업 엔론(Enron)에 이어 금년 들어 미국 2위의 장거리 전화업체 월드컴(Worldcom)이 38억불, 복사기전문의 제록스(Xerox)사가 60억불내외의 회계조작을 한 사실이 밝혀져 주가가 폭락하고 미국 증시가 휘청거린 사태를 보고 한 말이다. 오늘날 세계화 기치아래 국가간 금융시장이 개방되어 주도국인 미국 증시의 폭락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로, 나아가 유럽 증시로 동조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오랫 동안 회계의 중요성을 모르다가 1997년 말 IMF경제위기를 계기로 그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회계란 기업의 언어로서 자금의 공급자인 투자자 및 채권자와 자금의 수요자인 기업이 상호간에 실태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매개체인 것이다. 기업의 운영을 위임받은 경영자는 자신의 실적을 사실대로 재무제표를 포함한 회계보고서로 제시하고 투자/채권자는 이에 근거하여 관련 자금을 해당 기업에 계속 투자할 것인지 중도 회수할 것인지를 판단한다. 그 결과 시장경제는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바탕으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러한 시장경제의 하부구조(인프라)인 회계를 경영자가 조작하여 부진한 경영실적을 양호한 것으로 허위보고 한다면 기업 외부의 투자자와 채권자는 이를 모른 채 정보의 불균형상태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며, 심지어 기업 내부자거래에 휘둘리어 주가조작의 피해를 입기까지 한다.
 
때문에 증권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파수꾼으로서 공인회계사라는 외부감사인제도를 두어 경영실적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게 마련인 경영자의 재무제표를 회계감사 하도록 하고 있다.  외부감사를 받지 아니한 회계보고서는 쓰레기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에서 비롯되며 우량한 경영자일수록 자신의 재무제표에 차별적인 신뢰성을 인정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외부감사를 받아온 구미 각 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3월 입법화된 계리사(현, 공인회계사의 전신)제도가 별로 활성화되지 못하다가 1970년대 초 기업공개촉진법, 자본시장육성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해 법정감사로 정착되었다. 이렇게 도입된 외부감사는 필수불가결한 사회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강제에 의한 정부규제로 또는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치르는 통과의례로 인식하기도 했다. 일부 경영자의 경우 회계는 자신의 경영실적과 달리 얼마든지 조작가능한 것으로 보았고, 감사인 중에서도 회계판단에 관한 사항을 경영진에 유리한 방향으로 묵인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였다. 오죽하면 국제투명성기구(TI) 등이 우리나라를 최후진 회계불투명국가로 조사 발표했겠는가.

대표적인 사례가 IMF기간 중 적발된 대우그룹의 22조원 규모의 회계부정으로 전문경영인과 관련 회계사가 형사처벌된 사건과 2002년 3월 증권선물위원회가 (주)흥창, 신화실업(주) 등 13개 상장회사를 검찰고발, 유가증권 발행제한, 임원해임권고 등의 조치를 하고 관련 감사인에게 직무정지(1년), 특정회사 감사업무제한(3년) 등의 제재조치를 취한 사건 등이다. 

금년 5월 금융감독원 등의 감독당국에서는 작년에 이어 '기업경영 투명성제고를 위한 분식회계 근절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이 일응 포괄적이기는 하나 1998년 12월 우리가 기업회계기준을 전면 개정하면서 표준으로 삼은 미국회계기준(US Gaap)이 상술한 엔론 사태 등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보니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회계투명성 제고의 구성요인을 개념, 회계기준 제정기관, 경영자, 감사인, 그리고 감독·사법당국으로 나누어 필자의 소견을 피력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분식회계(window dressing in accounting)란 회계상 과대포장이란 뜻의 일본식 한자어로서 용어 자체가 불투명한 측면이 있는 바, 비윤리적 행위임을 투명하게 나타내는 회계부정, 회계조작 또는 부실회계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전 세계적으로 추구하는 회계투명성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정직한 회계라는 점이다. 일찍이 영국은 진실하고 공정한 회계(true & fair accounting)개념을 발전시켜 왔는데 우리는 구 기업회계원칙에 있던 진실성의 원칙(독일에서 유래)을 상대적 진실 운운하며 기업가치 내지 주가 유용성에 편향된 미국식 회계사고의 영향을 받아 삭제하고 말았다. 이제라도 일반원칙 또는 재무회계개념체계의 개정으로 진실성원칙을 회생시킴이 바람직하다.

셋째, 회계기준 제·개정에 있어 최근 논란이 된 미국 재무회계기준식의 구체적 규칙접근법(rule based approach)보다 국제재무보고기준(IFRS)식의 포괄적 원칙접근법(principle based approach)이 더 낫다고 생각된다. 회계기준서에 악용의 여지가 있는 일정 %기준 제시보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제정취지에 따라 엄격해석주의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경영자는 분식회계 내지 회계조작은 범죄라는 인식을 가져야겠다. 스톡옵션 등으로CEO의 보수가 주가에 연동되어 예민하겠지만 그럴수록 사실에 입각하여 실적을 보고할 때비로소 노사관계에서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향후 예상되는 증권집단소송제 도입시를 대비하는 방책이며 또 조세면에서 불필요한 세금유출 없이 실질과세받는 기초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다섯째, 공인회계사는 외부감사가 사회적 존재가치를 의심받지 않도록 자유수임제 아래 독립성을 절대절명의 가치로 준수하고 직업윤리를 과감히 강화해야 할 것이다. 국내외로 논란이 있는 감사업무와 컨설팅 용역의 병행수임은 외관상 자기자신감사위험에 노출되므로 사회일반이 납득할 수 있는 보완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며, 오히려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감사보수에 대하여 투입시간기준보수방식 등의 합리적 대안 제시로 이를 품위있게 극복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감독당국과 검찰·법원도 회계장부와 감사조서의 조작·폐기행위를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 등에 의한 외부감사방해죄, 불법행위책임 등을 적용하여 일벌백계함으로써 시장경제를 불구로 만드는 부정직한 회계행위를 발본색원하는데 적극 협력해야겠다. 나아가 감사의견 중 부적정의견과 의견거절 뿐 아니라 한정의견에도 불이익을 줌으로써 회계는 정직을 최고선으로 하는 윤리시스템임을 주지하도록 해야겠다.

[김광윤 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경영학박사)
아주대학교 경영대학 정교수(현)
공인회계사/사법시험/행정고시 출제위원
미국Harvard Law School 국제조세연구소 초빙학자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계·세무자문위원(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연구위원회 부위원장(현)
경실련(사)경제정의연구소 위원장(현)
서울지방국세청 과세적부심사위원(현)
한국회계학회 세무회계위원장(현)
한국세무학회 차기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