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 경제부총리는 구랍 31일 과천 청사에서 종무식과 다과회를 갖고 두가지 사자성어를 인용, 심경을 피력했다.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와 '온고지신(溫故知新)'이 그것. '도리불언..'은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지만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있어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뜻으로, 한(漢)나라 시대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다했던 이광(李廣) 장군을 칭찬한 말이다.
재경부가 과연 말없이 꽃과 열매를 국민들에게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경제정책을 이끌어온 부총리로서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인다.
'온고지신'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실려있는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는 공자님 말씀으로 권 부총리는 "경제정책에 단절이란 있을 수 없다"며 직원들이 이 말을 새겨주길 당부했다.
그는 "새 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지신(知新)'에 방점을 찍어야할 것"이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이 고사성어가 '옛 것을 알아야 새 것을 알 수 있다'는 의미가 강한만큼 기존 참여정부의 정책을 무시하거나 뒤엎으면 안된다는 심정이 느껴진다.
한상률 국세청장의 송년사는 이와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그는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자"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한 청장은 "밝은 빛이 있으면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라면서 지난해 현직 청장의 사상 첫 구속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지만 "낡은 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다"며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새해에는 과거의 불합리한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옛 것과 새 것을 함께 언급한 점은 재경부와 그 외청인 국세청의 수장이 같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게 전해진다.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도 참여정부에서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애틋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신년사에서 "무엇보다 그동안 많은 정책적 노력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주택시장이 다시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그 동안 추진해 온 부동산 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을 잘 뒷받침하면 거주중심의 주거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지만 마무리를 잘못하면 또 다시 과거로 돌아가 주기적인 투기와 집값불안이 재연돼 지난 5년간의 노력이 고통과 비용으로만 남게 된다"고 경고했다.
곧 있을 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장관들의 우려나 희망도 묻어나왔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신년사에서 "우리는 상하간의 개방적인 토론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경제기획원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 새해에도 과거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서로가 격의없이 생각을 나눴으면 한다"고 말했다.
당연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조직개편 논의가 한창인 시점이어서 이 언급은 옛 경제기획원의 부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관가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비해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의 신년사에는 걱정이 많이 배어있다. 그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우리부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신해양시대'에 걸맞는 우리부 위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강 장관은 이어 "하지만 지금은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맡은 바 업무에 보다 충실히 임해야할 시기"라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96년 해양수산부가 출범한 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시작하자"고 직원들을 다독였다.
그동안의 재벌규제 정책으로 새 정부에서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새 정부가 시장을 중시하는 정책기조를 갖고 있음을 감안, 공정위가 시장경제의 파수꾼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권오승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시장경제의 파수꾼인 저희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한 해 동안 공정거래법을 두 차례 개정하는 등 시장경제 선진화 기반을 확충했다"면서 "새해에는 경쟁원리가 우리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미치도록 정책역량을 기울이고 규제산업에 경쟁원리를 확산해 국민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소비자복지를 증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서도 "중소기업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그들이 처한 불합리한 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게 하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