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당선인측 "인위적 물갈이 없다"
'4.9 총선' 공천을 둘러싼 한나라당내 갈등이 격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논쟁의 초점도 공천 시기 문제에서 당내 주류세력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에 의한 '인위적 물갈이' 논란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이 당선인의 측근으로 총선 실무를 총괄하는 이방호 사무총장이 '40% 물갈이' 발언을 한 것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과 관련, 7일 박근혜 전 대표측 인사들이 공개 석상에서 이 총장의 사퇴를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등 집단적인 문제 제기에 나서면서 친이(親李)-친박(親朴)계간 정면충돌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친이-친박 공개 대치 = 박 전 대표의 핵심측근인 김무성 최고위원은 이날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선인 측근 모모 인사가 공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구체적 정보가 들려온다"면서 "이런 소문이 사실이라면 구태정치 악습인 1인 정당정치 부활이고 민주정당이 '사당(私黨)'으로 전락하는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함께 회의에 참석한 이 사무총장을 향해 "공정한 당무 집행을 해야 할 사무총장이 월권적이고 비민주적 발언을 함으로써 당 분열이 예고되고 있다"면서 "이 총장은 지난 대선 때 선거대책본부장으로서 공헌한 분이지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의 분열을 막는 길"이라며 사실상 총장직 사퇴를 요구했다.
친박 인사인 김학원 최고위원도 "요즘 공천 문제와 관련해 총장에게서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원칙과 화합 차원에서 부적절했다"며 "공천 문제는 당헌상 최고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다. 총장은 필요한 절차를 준비해주고 총선 기획단으로 역할을 하면 되는데 물갈이가 어떻고, 영남은 어떻게 하고, 경선에서 누구를 지지한 사람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 등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당헌에 규정된 권한을 벗어난 월권이 틀림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공천 과정은 아주 순수하고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돼야 하고, 시기도 물 흐르듯 그대로 흘러가면 된다"며 "거기에 인위적인 작용을 할 필요가 없고 순수하게 능력과 당의 기여도와 경쟁력을 고려해 교체가 되면 되는 것이고, 안 되면 안 되는 것이지 물갈이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김무성, 김학원 최고위원과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 등 친박 의원 5~6명은 전날 오후 시내 모처에서 박 전 대표를 직접 만나 공천 문제와 관련된 대책을 숙의한 뒤 이처럼 공개적인 문제제기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회동 사실을 대외적으로는 부인하면서 '극비'에 붙일 만큼 조심스러워 했다. 따라서 상당히 민감한 내용의 논의가 오고갔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박 전 대표를 만난 이후 이방호 총장 사퇴 요구가 나온 만큼 박 전 대표도 공천 문제에 대해선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보였을 것이란 관측도 가능하다.
이날 회의에선 친이 성향인 정형근 최고위원도 이 사무총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물갈이니 뭐니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구태"라며 "공심위에서 기준과 원칙을 갖고 하면 되지, 사무총장이 당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퇴행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방호 사무총장은 "특정한 측에 대해 물갈이를 운운한 적은 전혀 없다"며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오보에 의해 오해가 생긴 것뿐 진심은 인위적 물갈이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게 해명의 요지였다.
이 총장은 "조선일보에 40% 물갈이를 한다고 났다. 기자가 전화통화에서 (물갈이 비율이) '40%면 되겠느냐'고 물어서 '그런 쓸데 없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총장으로서 수치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총장이 어떻게 '40% 물갈이를 할 수 있다'는 직설적 표현을 할 수 있느냐"고도 했다.
그는 이어 "특정 지지자들에 대해 물갈이를 하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면서 "상대방에서 의구심을 갖고 기획 공천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당선인 측 인사로 분류되는 안상수 원내대표는 "공천은 당헌당규가 규정한 절차에 따라 공심위가 원칙을 갖고 하면 된다"면서 "한나라당은 여러 차례 선거를 통해 공천 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고 시스템상 밀실공천이 이뤄질 수 없는 만큼 너무 왈가왈부 할 필요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강재섭 대표는 이처럼 당내 공천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데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는 최고위원들의 발언이 모두 끝나자 "이제 공천과 관련해 서로 선입견을 갖고 의심하고 공격하는 것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면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대표는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구를 밀었는 지 관계없다. 가장 경쟁력있는 사람을 뽑겠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후보를 뽑는 게 당의 방침"이라며 "양쪽 측근이라는 분들이 나서서 자꾸 이상한 얘기를 한다. 힘있는 척 하느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자꾸 의심을 하는 것도 정치 공세라고 생각한다"고 이 당선인 측과 박 전 대표 측을 싸잡아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앞으로 총선 관련 당직자들은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하겠다"면서 모든 당직자들이 총선과 관련해 함부로 말한다든지, 오만하게 한다든지, 말을 실수해서 국민에게 건방지게 보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물갈이' 논란 배경은 = "인위적 물갈이는 없다"는 당 지도부의 공통된 견해 표명에도 불구, 당 안팎에선 과거 총선의 예를 볼 때 30~40% 정도의 자연스러운 공천 물갈이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연 확대 차원에서 뉴라이트 등 외부 인사 영입도 필요한데다 공천 부적격 사유에 걸리는 현역 의원들도 종종 나오는 만큼 공천을 하다 보면 일정 비율의 물갈이는 필연적이라는 점을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원로인 김용갑 의원의 17대 총선 불출마 선언에 이어 대통합민주신당 중진인 김한길 의원의 '정계 은퇴' 선언이 잇따르면서 한나라당내 4선 이상 원로.중진들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당 지도부가 "나이나 선수 등이 공천 배제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차 밝히면서 당내 불안감 해소에 나선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물갈이 논란 확산의 진짜 배경은 경선 기간 박 전 대표를 도왔던 의원들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물갈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빌미로 주류세력인 이 당선인 측에서 친박 인사들을 쳐내려 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경선 기간 박 전 대표의 대변인을 지낸 김재원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빨리 공심위를 구성해서 그 분들 중심으로 의논을 해서, 30% 물갈이든, 40% 물갈이든, 이명박 지지자이든, 박근혜 지지자이든, 원칙을 정해서 공정한 공천을 한다면 어느 누구도 저항하고 반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측에서 마치 '물갈이'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국민에게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의견도 적지않다.
한 핵심 측근은 "물갈이는 실제로 필요하지만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라는 쪽으로 전선을 옮겨야 한다"면서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이 물갈이 저항세력으로 보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 측에서도 이 사무총장 발언 관련 보도를 계기로 '물갈이' 부분에 대해선 말조심하는 분위기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CBS라디오에 출연해 "물갈이론은 선거가 되면 정당에서 으레 나오는 얘기"라며 "정치권에서 때가 되면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얘기지, 계산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