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직원인 정상곤 前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명목으로 8000만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전군표 前국세청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16일 열린 4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정씨와 전씨 측 변호인간의 날선 공방이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전씨와 정씨가 법정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 이날 검찰의 증인심문에서 정씨는 당초 진술한 대로 현금 2000만원을 가지고 나와, 서류봉투에 1000만원을 넣어 보이고 사각파일철에 2000만원을 넣는 장면을 태연히 시연해 보였다.
부산지방법원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정씨는 진술계기를 묻는 검찰질문에 "전군표 청장에 대한 상납 사실을 진술하게 된 것은 혼자서 무한대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어 스스로 입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처음엔 조직의 명예를 위해 함구했지만 김상진씨로부터 받은 1억원 용처에 대한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특검 이야기가 나오면서 더 이상 버티기에 한계를 느꼈고, 이에 따라 구속 40여일만인 9월16일 청장에 대한 금품수수 사실을 처음 진술하게 됐다는 것.
그는 또 "김씨로부터 받은 1억원 가운데 일부가 정치권 등 거물급에 건네졌다는 주장이 있다"고 검찰이 다그치자 "전혀 사실과 다르다. 30년 함께 일한 국세청의 수장에게 돈을 줬다고 말한 것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청 부동산관리국장으로 발령이 나서 불만이 있어서 소원한 관계 복원 차원에서 지난해 1월3일 미화 1만달러를 전했다"며 "이후 청장의 마음이 이미 떠난 사실을 알고 원하는 자리로 가기 힘들다고 판단, 이후부터는 돈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본격적으로 반대심문에 나선 전씨 측 변호인들은 예리했다. 변호인은 "지난해 7월18일 청장취임식 때 1000만원 수수와 관련해 검찰수사기록에 청장실 대기실 소파에서 기다렸다고 돼 있는데 사실이냐"며, 대기실 약도에 당시 앉은자리를 지목해 보라고 요구했다.
정씨가 앉은자리를 지목하자 변호인은 즉각 "당시에는 청장 취임을 위해 대기실 소파와 테이블을 다른 곳으로 치웠다"며 "증인이 거짓진술을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정씨는 다급했는지 "통상 그런 식으로 대기했다. 당일 상황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변명했다.
변호인은 특히 "김씨로부터 받은 1억원 가운데 일부 돈을 국세청장에게 건넸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지난해 7월5월 2000만원과 7월18일 1000만원은 어디서 나온 돈이냐"며 "돈을 받기도 전에 돈을 줬다는 것인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몰아쳤다.
이에 대해 정씨는 "당시 검찰조사에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렇게 진술했을 뿐"이라며 "몇 천 만원 정도의 돈은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오후 2시부터 7시5분까지 무려 5시간 5분에 걸쳐 진행됐으며, 2차례 10분간씩 휴식시간을 갖기도 했다. 검찰 대질조사 이후 법정에선 처음 만난 전씨와 정씨는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내내 애써 눈길을 피해 어색한 장면을 연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