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경영목표를 수정하거나 주요 사업이 차질을 빚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비상경영' 체제의 가동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연초에 세웠던 사업계획을 재검토하고 신규사업이나 인수합병(M&A)을 보류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불요불급한 지출을 자제하는 등 긴축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수출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달해 원자재값 상승 압력을 상쇄하더라도 환율 인상에 따른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큰 편이다.
삼성전자는 최근의 단기 환율 급변에 따른 경영계획 수정은 하지 않았으나 연초 그룹차원에서 잡은 기준환율이 900원대 초반에 불과하기 때문에 1,000원을 넘어서는 현재의 환율이 계속된다면 경영계획을 새로 짜야 할 형편이다.
삼성전자는 무엇보다 환율 급변에 따른 대외 금융환경 불안 가중을 우려하면서 환율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영체질을 보강하기 위해 원가경쟁력 강화, 공급망 관리, 경영혁신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유가 인상에 따른 대응과 관련해서는 항공, 자동차, 조선 등 업종과는 달리 유가 영향을 덜 받기는 하지만 에너지 낭비 제거를 포함한 원가절감 노력에 주력하기로 했다.
LG전자 역시 지금으로서는 기준 환율이나 그에 연동한 경영목표 수정계획이 없지만 현 추세로 환율이 계속 요동친다면 하반기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환율 상승은 원자재값 급등 등의 상쇄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LG전자에 '플러스' 요인이다.
LG전자 IR팀장 박성호 상무는 "사업계획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몇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해 두고있는 만큼 당장의 사업계획 변동은 없다"면서 "매월 향후 6개월에 대한 경영전망을 점검하는데 하반기 계획과 관련해 일부의 내용이 변동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에너지 절감을 위한 1인 1제안' 제도 운영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 포스터와 현수막 게시, 에너지 절약 경진대회, 전원 플러그 뽑기, 스팀 등 에너지 누수 방지 노력 등도 그런 맥락에서 전사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대표적인 수출 기업인데다 차 1대를 생산하는데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가 원자재 값과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 없지만 연초 제시한 사업목표는 아직 고수하고 있다. 진행중이거나 예고된 투자 역시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대.기아차는 최근의 원자재값 폭등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원자재값 이 고스란히 원가에 반영되는 데다 주물업계의 납품중단을 비롯해 협력업체들의 '납품가 인상' 요구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원자재값 상승분을 고스란히 차값에 반영할 수 없는 자동차 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연구개발과 설계 단계에서부터 불요불급한 부분을 개선 또는 변경하는 등 원가절감 활동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유가와 환율의 동시급등으로 이중폭격을 맞은 항공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긴축경영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항공은 고유가와 환율 인상으로 영향으로 올해 신규 사업을 중단하고 현재 사업도 긴축 운영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환율을 달러당 900원대 초반으로 봤지만 1,000원대까지 치솟음에 따라 환율에 따르는 대규모 영업손실이 불가피해 신규사업 확장을 위한 인수합병 준비를 중단했으며, 불필요한 기내 물품을 싣지 않는 등 경제적인 운항에 힘을 쏟고 있다.
CJ제일제당은 고유가, 환율, 국제 곡물가 인상 등 '3중고'를 맞아 마른 수건이라도 쥐어 짜는 심정으로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전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국제 원맥가 급등에 따른 가격 인상 압력을 부분적으로나마 흡수하기 위해 공장의 공정과 효율 개선작업인 원가절감운동(TOP)을 벌이고 있다.
대외 경영환경 불안이 지속되고 내수경기마저 부진한 상황을 맞아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두고 원가절감운동을 전사업장으로 확대하고 수율 및 급비 향상에 힘 쏟기로 했다.
수율 향상은 밀을 가공할 때 효율성을 높여 최대한 많은 밀가루가 생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급비 향상은 등급이 좋은 고급밀을 많이 확보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또 원유가 인상에 따른 해상운임을 절감하기 위해 용선의 장기계약을 유도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과 호주에 집중되어 있는 원맥 수입선도 다변화하고 있다.
원맥도 공동구매를 통한 구매력 확보로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구매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SK그룹 계열사들은 아직 경영계획을 변경하지는 않았으나 환율 급등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상황이 예상 수준을 넘어선데 따라 계열사 기획실을 중심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SK그룹은 경기 침체기가 올 경우에 대비해 사업 전반의 비용 효율성을 높여 유동성 위험을 피하고 대체에너지와 신약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데 투자하는 한편 글로벌 인재를 확보해 경쟁력을 키우는 기간으로 삼을 방침이다.
GS칼텍스는 유가는 80-90달러, 환율은 900원 초반에서 후반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성해 사업계획을 세워놨기 때문에 이에 따라 대처하고 있으며 아직 목표 변경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빅3'를 비롯한 조선업체들은 최근의 대외적 경제여건 가운데 원자재 문제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고 있다. 원자재인 조선용 후판의 가격 상승과 함께 후판의 수급상황 모두 문제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일본 철강업체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t당 220-250 달러 올리기로 한 데다 국내 공급업체인 동국제강도 이미 한차례 가격을 올렸고, 포스코의 제품값 인상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1-2년전에 수주한 물량을 현재 후판값이 오른 상황에서 건조해야 하는 만큼 이들 조선업체로서는 수익성 악화라는 환경에 처한 셈이다.
다만 빅3를 중심으로 한 조선업체들은 현재의 후판값 상승을 일정부분 선가에 반영하는 것을 비롯해 생산성 향상, 원가 절감 노력 등으로 어느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은 도크내 건조기간을 기존 평균 55일에서 45일로 열흘 앞당기는 것을 목표로 한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고 있으며, 대우조선해양은 설계 변경 등을 통해 철판 사용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진행중이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은 원자재 문제에 대해 "어려운 상황"이라는데 공감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연초에 제시한 사업목표를 변화된 환경에 맞춰 수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대중공업의 경우 연초 보다 수주목표를 20억 달러 상향 조정해 눈길을 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 수주가 지난 2월 한달에만 57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연초 예상 보다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 기존 274억 달러(종합기계 포함)에서 294억 달러로 수주 목표치를 높였다.
업체 관계자들은 "현재의 후판값 상승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며, 충분하지는 않지만 과거 선박 수주 당시 그 예상치를 선가에 반영한 상황"이라며 "따라서 현재의 인상분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업체들이 당면한 문제는 후판 가격의 상승 보다는 수급 불균형의 문제다. 대형 조선업체들의 경우 철강업체들과의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로 당장 원자재인 후판을 공급받는데 문제는 없지만 중.소형 업체들은 사정이 다르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부 신생 조선업체들의 경우 건조중인 물량에 못미치는 후판을 공급받고 있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곳도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