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류ㆍ장난감ㆍ화장품 등 과대포장 심각
가정주부 김영지(38)씨는 최근 마트에서 딸 아이의 생일 잔치에 쓸 과자를 샀다가 `낚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푸짐한 생일상을 기대하고 부피가 큰 과자를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샀지만 막상 뜯어보니 과자의 양은 포장지 크기의 절반도 안됐던 것. 포장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을 때에는 커 보였지만 터트려보니 홀쭉해진 과자 봉지에 남은 과자는 초라할 정도로 조금이었다.
결국 1만원짜리 지폐를 1장 더 들고 슈퍼를 다시 찾았지만 아까 슈퍼에 갈 때처럼 즐거운 마음은 아니었다. 적은 과자의 양 때문에 속았다는 씁쓸함도 있었지만 비닐 소재의 봉지가 분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과자 업체의 자원 낭비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8일 시민단체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시중에 판매되는 과자의 대부분은 김씨가 구입했던 과자들처럼 질소충전으로 빵빵하게 부풀려 포장돼 있다.
과자 제조업체들은 과자가 부스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질소충전으로 빵빵하게 포장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대포장으로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려는 의도도 숨어있다는게 이 단체의 설명이다.
◇ 과자류 대부분 `포장 부풀리기' = 실제로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지난 3월 26개 과자 제품을 조사한 결과 전체 포장재 중 내용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34~58%였는데, 이 중 19개 제품은 50%이하였다.
이 단체는 포장을 뜯은 뒤 세웠을 때 접합부를 제외한 포장지의 세로 길이에 비해 제품이 얼마정도 쌓였는지를 측정했는데 이렇게 과반수가 절반 이상이 비어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과대포장이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것이며 자원 절약과 재활용에도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명확하지만 현행법상으로는 포장 봉지의 부피에 비해 속에 든 과자의 양이 아무리 적더라도 단속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정하고 있는 `제품의 포장재질 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이하 포장재질 등에 관한 규칙)은 `판매과정에서의 부스러짐 등을 방지하기 위해 공기를 주입하는 경우 포장공간비율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어 아무리 심하게 부풀어져 있어도 단속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의 홍수열 정책팀장은 "업체들이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과자제품들의 경우 질소충전이 된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보면 과대포장으로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과자봉지 안에 받침 접시를 사용하거나 속 포장으로 2중 포장을 하는 식으로 쓸데없는 자원낭비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화이트데이 초콜릿도, 아이들 장난감도 `과대포장' = 과대 포장은 화이트데이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선물용 먹거리에서 특히 심했다.
같은 단체가 지난 3월 화이트데이를 전후해 초콜릿과 사탕 제품 9개를 무작위로 구입해 포장 비율을 조사했더니 절반을 넘는 5개 제품이 법률이 정한 기준치를 위반했다.
내부의 장식이나 비닐 포장을 제외시키면 선물 박스에 담겨있는 초콜릿(사탕)의 양은 포장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포장지 내의 초콜릿(사탕)의 낱개 가격은 1개에 2천원이 넘을 정도로 비쌌다.
포장재질 등에 관한 규칙은 제품의 종류에 따라 10~35% 범위의 포장공간비율을 규정하고 있다. 포장공간 비율은 전체 상품에서 포장 공간이 차지하는 부피를 뜻하는데 숫자가 기준보다 높으면 과대포장으로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지난 어린이날 불티나게 팔렸을 장난감이나 어버이날 인기 선물인 화장품, 건강식품 역시 과대 포장이 흔한 제품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완구류 19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13개 제품이 과대포장 기준을 위반했는데 기준치를 35% 포인트나 넘는 경우도 있었다. 화장품과 건강식품 역시 각각 조사대상의 58%와 33%가 기준을 넘어섰다.
특히 완구류의 포장재는 특히 재활용이 쉽지 않고 유해한 환경호르몬을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진 PVC가 많이 쓰여 재활용에도 힘들고 아이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잘 썩지 않은 플라스틱 제품이라도 PET(폴리에스터) 같은 다른 소재는 고용연료로 만들어져 에너지화되는 것이 요즘 추세지만 PVC는 고형연료의 염소함량비율을 높여 질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재활용되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단속 `유명무실'…환경부 "법개정 위해 문제점 연구 중" = 이처럼 관련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대포장이 횡횡하고 있는 것은 단속이 지방자치단체에 일임되면서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6년의 경우 전국적으로 모두 1만7천여 차례에 걸쳐 점검이 실시됐지만 위반 적발 건수는 150건으로 1%를 채 넘지 못했다.
다른 곳보다 비교적 실질적인 단속을 실시하고 있는 부산광역시의 위반 적발 건수가 절반에 가까운 70건이나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북도에서는 1건도 위반 사례가 적발되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단속을 전담하는 공무원이 없는데다 관련 지식도 부족해 적극적인 단속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적발되면 물어야 하는 과태료가 300만원이나 돼 담당 공무원들이 적발하기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고 말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의 홍팀장은 "단속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관련 규칙을 개정해 과대포장 신고제를 도입하고 과태료를 정도에 따라 차등적용해야 한다"며 "감독 주체도 지자체보다는 정부 산하의 연구기관이나 환경부 차원으로 변경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의 이희철 자원순환정책과장은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고 단속 대상도 지금 상황에 맞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규제 개선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