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4일 한국증권선물거래소와 한국자산관리공사(KMACO)를, 전날 산업은행 대출비리 의혹과 관련해 그랜드백화점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공기업 비리수사가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지난 12일 공기업 비리와 국가보조금 비리를 '2대 중점척결 대상범죄'로 규정하고 특별수사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직후 불과 이틀 만에 검찰이 3개 공기업ㆍ공공기관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이다.
검찰이 '동시다발ㆍ속전속결'식 수사를 전개하면서 수사 방향과 최종 목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기 수사는 산재한 공기업ㆍ공공기관 임직원의 '개인 비리'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수사가 본궤도에 오르면 개인 비리가 모여 자연스레 형성되는 조직 내 '구조적 비리'로 무게 중심이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수수사 대상이 되는 범죄는 은밀하고 계획적으로 이뤄지면서도 구체적인 피해자는 없거나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 감정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 뇌물ㆍ탈세 및 배임ㆍ횡령 등 지능형 범죄가 많다.
따라서 검찰은 수사 초기에 개인 비리 위주로 접근, 압수수색을 통해 중요 물증부터 우선 확보한 뒤 관련자들을 차례로 조사해 진술을 확보하고, 차츰 범위를 넓혀 공기업 전반의 비리나 공직자 비리를 '정조준'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이날 오후 '한국자산관리공사 일부 임직원들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첩보와 관련, 서울 강남구 자산관리공사의 임직원 사무실 및 서류보관 장소 등을 압수수색했다.
오전에는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가 한국증권선물거래소 부산 및 서울 사무실을 동시에 압수수색했으며, 이는 거래소측이 1년9개월 간 10억5천만원을 골프접대비로 쓰는 등 일부 경비가 과도하게 지출된 점과 관련해 배임적 혐의의 물증을 찾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검찰은 자산관리공사의 김모 부장 등 2명을 체포해 공사 보유채권의 채무금을 조정해 주는 과정에서 거액의 리베이트를 챙긴 의혹을 추적 중이며, 리베이트 수수가 공사 차원의 관행인지도 확인할 방침이어서 '조직 비리'로 수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앞서 중앙지검 특수3부는 전날 그랜드백화점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제공한 정황이 포착됨에 따라 백화점 본점 등을, 지난달 25일에는 특정 건설사 특혜지원 의혹과 관련해 석탄공사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그랜드백화점 사건에서도 '대출 로비'를 중심으로 관련 임직원들의 개인 비리에 이은 조직적 비리 가능성을 집중 추적 중이다.
사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권 초기 사정 바람이 거셀 것이라는 예상이 일찌감치 나돌았었다.
그러나 임채진 검찰총장이 '품격 수사', '절제 수사'를 내세우면서 검찰 내부에서조차 특수수사가 너무 소극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 단행된 검찰의 공기업에 대한 잇단 압수수색은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공기업의 경우 민간 기업에 비해 더 높은 투명성과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들어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공기업 쇄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의 친기업 성향으로 인해 과거와 같이 민간기업을 상대로한 대대적인 특수수사가 사실상 쉽지 않은 분위기에서 검찰이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였던 공기업으로 화살을 돌린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공기업 수사와 관련해 비자금 조성과 횡령, 분식회계 및 탈세, 임직원의 직무관련 금품수수, 인사비리 및 경영관련 업무상 배임, 담합 입찰과 불법하도급, 업무알선 비리 등을 단속대상으로 정해 감사원 자료와 내부자 고발 등 각종 정보를 수집ㆍ분석해왔다.
검찰은 현재 산업은행과 한국전력, 한국토지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도로공사, 대한주택공사 등 7개 공기업을 중심으로 전국 20여개 공기업ㆍ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수사 또는 내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사안이 중대할 경우 대검 중수부가 직접 나선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어 연간 수천억~수조원을 주무르면서도 그동안 사실상 무풍지대에 놓여있던 대규모 공기업으로까지 검찰의 수사가 확대될지 주목된다.
또한 검찰 사정의 중추인 대검 중수부는 "공기업ㆍ공공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민간기업도 필요한 수사는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공기업 수사가 민간기업으로 이어질지 여부도 재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