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증권거래법에는 본인과 특별관계자의 소유분을 합해 주권상장법인 주식 등을 5%이상 보유하게 될 경우 5일 이내에 보유상황을 관계기관에 보고하고 이후 보유주식이 1%이상 변동하는 경우 5일 이내에 관계기관에 보고토록 한 제도가 있습니다.
지난 1991년 시장 투명성 제고 및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방어를 위해 도입된 '5%룰' 제도입니다.
증권거래법상 5%룰과는 의미와 내용이 다르지만 국세청 고위간부들에게도 앞으로 '납세자 신뢰도 제고'와 관련해 '5%p룰(Rule)'이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줄곧 '납세자 신뢰도 확보'가 가장 중요한 국세청의 핵심가치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 기관 중 사상 최초로 한국생산성본부에 의뢰, 지난 3월부터 5월 중순까지 납세자 신뢰도 평가를 진행했습니다.
한 국세청장은 지난 4월 3일 6개 지방국세청장들과 성과계약 체결식을 가진 자리에서 "4월과 12월에 납세자 신뢰도 평가를 실시해 이 기간에 국민 신뢰도를 최소 5%p, 최대 10%p이상 높이자"고 강조했습니다.
한 국세청장은 이어 "신뢰도를 최소 5%p이상 올리지 못한 세무서 및 지방청 고위직에 대해서는 승진·전보·연봉 등에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밝힌 뒤 "국세청 전체 신뢰도가 5%p이상 상승하지 못하면 당장 나부터 책임지겠다"고 '폭탄발언'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뢰도 5%p상승은 국세청장을 비롯해 6개 지방국세청장, 107개 일선 세무서장들의 '최우선 과제'가 된 동시에 '생명줄'이 된 셈입니다.
29일 국세청이 '5%p룰' 적용의 기준점이 될 '납세자 신뢰도 평가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이 점수를 기반으로 삼아 앞으로 '책임론'을 제기한 한 국세청장은 물론 국세청 고위직들의 힘겨운(?) 생존레이스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신뢰도 평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백분율(%)로 따졌지만 신뢰도가 '점수화'되어 도출됐기 때문에 백분율 대신 점수를 기준으로 따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4월 30일 기준으로 국세청 전체의 납세자 신뢰도는 62.5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국세청(청장 김갑순)과 중부국세청(청장 조성규)은 각각 62점과 63점으로 공개됐습니다. 대구국세청(청장 채경수)과 광주국세청(청장 김기주)이 66점의 신뢰도 점수를 얻었고 부산국세청(청장 허병익)이 64점을 얻었습니다.
107개 일선세무서별 신뢰도 점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정읍세무서(서장 허명재)가 73.7점으로 전국 1위, 공주세무서(서장 신준영)가 73.5점으로 전국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에 반해 속초세무서(서장 이용우)는 46.1점으로 전국 107개 일선세무서 중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국세청은 올해 12월 다시 한번 납세자 신뢰도 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이를 감안해 5%p룰을 적용해 보면 각급 기관장들이 책임져야 할 '마지노선'이 분명해 집니다.
일단 국세청 전체 신뢰도는 67.5점 이상을 획득해야 국세청 최고 기관장이 책임을 지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지방청은 67점 이상, 중부지방청은 68점 이상 신뢰도 평가점수를 얻지 못할 경우 기관장은 어떤 형식으로든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또한 대구청과 광주청은 71점, 부산청은 69점 이상 신뢰도를 올려놓지 못하면 연봉삭감 등 불이익을 각오해야 합니다. 일선세무서의 기관장들도 각자 받아든 4월 성적표에 5점 이상을 더하지 못하면 눈물을 머금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신뢰도를 5점 이상 올리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4월 신뢰도 평가결과를 토대로 분야별, 관서별 신뢰도 제고 방안을 마련해 신뢰도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병춘 국세청 차장은 "올해 연말 신뢰도 평가를 다시 실시해 결과를 관리자 인사에 반영할 계획"이라며 "또한 성과관리와 신뢰도 평가를 지속적으로 연계시켜 성과와 경쟁의 문화를 뿌리내리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전국의 일선 직원들은 각 관서 상황에 맞는 방안을 마련해 국민신뢰도 향상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세청장이 내세운 국세청의 '최대가치(신뢰)' 실현을 위해 똘똘 뭉쳐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은 모양입니다. 신뢰도 평가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각에서는 "일선에서 아무리 열심히 한다해도 중앙의 고위간부와 관련한 사고가 터지면 국민의 세무관서에 대한 신뢰도는 급전직하하는 현실에서 밀어 붙이기식 신뢰도 제고 노력은 한계가 있다"는 '따끔한' 목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전국 각지에 근무하는 일선 직원들에게까지 국세청이 추진하고 있는 신뢰도 제고 프로젝트 의미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전직 국세청장의 구속, 최근 불거진 또 다른 전직 국세청장의 '구설' 등으로 일선 직원들이 느끼는 허탈감이 적지않은 때문인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