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연구소장들은 9일 정부의 각 기관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시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사전 의견조율을 통한 정책의 일관성 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의 쇠고기 파동, 공공기관 민영화 등의 이슈들은 국민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런 사태들이 한국의 대외신인도나 투자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런 사안들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향상하는 등 경제시스템 전반을 개혁하는 정부의 기본 계획에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컨트롤 타워가 없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책당국들이 여과없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놓으면서 시장에 혼란한 신호를 주고 있다"면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책이견을 조율해 일관성있는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정책 리더십 발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경제 규모가 1조달러에 이르기 때문에 1980대까지의 일사불란한 조정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청와대, 한나라당 등 당국이 금리, 환율, 경기 등 거시변수를 놓고 의견 교환과 함께 조율의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부총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범정부적인 정책의 일관성과 정책수단의 조화는 필요하다"면서 "이는 대통령이 경제정책팀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나왔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정책금리나 추경편성에 대한 의견충돌은 경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이는 경제정책을 입안.추진하는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경제 수석을 중심으로 의견조율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해소된다"고 말했다.
◇ 인플레 기대심리 억제해야
물가 정책에 있어서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억제해 추가적인 물가상승을 막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경수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억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구현 소장도 "인플레 기대심리가 커지면 임금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이는 물가상승을 더 부추기게 된다"며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전기료 및 가스료 등 공공요금의 인상도 최대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수입 농산품.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낮추고 농산물 유통체계를 단순화하며 물류 부문에 유류지원을 늘려 원가 상승분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는 정책으로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물가로 타격이 큰 일부 계층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가격이 급등한 품목에 대해 선별적으로 탄력 세율을 적용해 가격을 안정화할 필요는 있지만 가격급등이 일시적인지 구조적인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고환율 정책은 `판단 미스'
연구원장들은 정부가 수출 활성화를 위해 높은 환율을 지지한 것은 글로벌 차원의 물가 급등세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물가를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환율 상승이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수출에 도움을 주지만 그 효과가 예전처럼 크지 않다는 사실을 정부가 간과한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채욱 KIEP 원장은 "지나친 환율의 절하는 수출증대라는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수입물가 상승이라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적절한 환율정책을 통한 수입물가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주현 원장도 "국내 수출은 환율보다 수입국의 경기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지고 있어 환율 요인이 수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에 한계가 있다"며 "반면 해외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는 원화 약세가 물가 상승을 부추겨 내수위축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개혁 후퇴 우려된다"
최근들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공공기관 개혁 등을 둘러싼 사회적인 갈등과 관련, 의사소통과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주현 원장은 "쇠고기 파동은 정부와 국민간의 의사소통 부재, 정부부처의 혼선 등에 따른 것"이라면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짐에 따라 건강이 중요시되는 가치관의 변화를 정부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쇠고기 파동으로 형성된 정부와 국민의 불신이 해소되지 못하면 이는 향후 정부가 추진하려는 모든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수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은 "정부와 국민간의 충분한 의사소통이 미흡하다"면서 "이런 갈등과 혼란은 대내외적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린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 소장은 ""그동안 정부의 실책이 있었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국민의 납득을 구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면서 "이런 혼란으로 인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의 개혁 어젠다와 모멘텀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연구원장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경제정책이 경제살리기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지나치게 성급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경기둔화, 국제 원자재가 급등 등 통제할 수 없는 외생적 충격이 큰 상황에서 무리하게 경기활성화 정책을 펼치다보니 물가상승만 더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김주형 원장은 "정부가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며 "최근의 어려움들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밖에 없는 현상들이며 새 정부가 국가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내세웠던 비전들을 단기적인 정책들 때문에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