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 임직원 8명에 대한 두 번째 재판이 18일 진행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의혹 사건과 관련, 에버랜드 주주들이 실권한 경위를 두고 집중적인 공방이 벌어졌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회장 등의 공판에는 에버랜드 CB 헐값발행 의혹으로 기소돼 1ㆍ2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던 박노빈 에버랜드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당시 에버랜드 경영지원실장이었던 박 대표에게 ▲CB 발행과정에서 의 비서실 지시 여부 ▲제일제당을 제외한 에버랜드 주주들이 일제히 CB 인수권을 포기한 경위 ▲실제 자금조달 목적으로 CB를 발행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박 대표는 "그룹적 영향이 있는 사안은 비서실과 논의하는 것이 보통으로, 비서실의 고(故) 박재중 전무에게 CB발행 사실을 알려줬었다"며 "박 전무가 CB발행 결의 이사회가 열리기 전 '이 전 회장의 실권분을 이재용 남매가 인수하고 추가 실권분 역시 가급적 인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알려왔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박 대표는 같은 사건으로 허태학 전 에버랜드 대표와 함께 수사 및 재판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비서실과의 연락이 일절 없었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이번 특검 수사에서 김인주 전 사장이 '박 전무에게서 박노빈씨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함에 따라 그런 일이 있었음이 기억났다"고 증언했다.
그는 그러나 "그룹적 차원에서 알려준 것일 뿐"이라며 비서실 차원의 '지시'와 그에 따른 '보고'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특검측의 주장을 비켜갔고 "자금조달 필요성이 두세달 전부터 논의가 됐고 유상증자보다는 CB발행이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대량 실권돼 당혹스럽기도 했다"며 주주들의 실권이 예정돼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을 반박했다.
재판 말미에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와 관련해 삼성 계열사들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매매로 양도차익이 발생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증거조사를 하겠다"면서 "내부정보를 이용한 매매로 양도차익이 발생했다면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을 정도로 중한 범죄라 양형에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검이 기소한 이 전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는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거래로 발생한 양도차익의 세금을 포탈한 부분에 한정돼 있어 미공개정보 이용 행위를 금하는 증권거래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재판부는 주식거래 과정에서 내부정보가 이용된 증거가 확인될 경우 양형에 참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앞서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 전 이 전 회장의 변호인은 재판부에 "이 전 회장의 건강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고 저혈당으로 피로감을 느껴 지난 번 재판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며 "(재판 중에) 소량의 당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첫 공판 때 다소 피로한 기색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이날은 8시간 이상 계속된 재판 내내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재판이 끝난 뒤에는 "무죄면 책임을 안지겠다는 것이 경영쇄신안 이행과도 관련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상식 밖의 이야기 아니냐. 내가 책임진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