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선진국은 50억 기준…회계감사는 경제활동 인프라인데"
외부감사 대상을 축소하는 관련 법 개정안이 본격화하면서 회계업계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업계는 애써 담담하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있다.
회계업계는 정부가 회계인프라 구축, 회계선진화 방안, 회계투명성을 내세우면서도 회계를 규제로 인식해 규제 완화 차원에서 외감 대상을 축소하는 것에 대해 회계신인도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규탄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외감 대상이 자산 기준 7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상향조정되면 작년말 기준으로 외감을 받은 기업이 1만8074개사에서 1만4400여개사로 축소되며, 회사당 1000만원~1500만원(총400~500억원)의 감사수수료 절감효과가 있다.
여기에 내부회계관리시스템을 적용 받는 기업도 1만8074개사에서 3074개사로 약 6분의 1로 대폭 축소돼 회사 당 500만원~2000만원(총 1400억원~1600억원)의 비용이 절감된다.
□회계사, "외감 대상 축소해도 먹고사는 것 걱정 없어"…"불투명한 사회"가 문제= 외감 대상이 축소되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회계업계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불투명해지는 것이 문제"라며 "외감 대상을 오히려 늘려야 하는데 줄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는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27일 감사반연합회에 따르면 외감 대상이 축소되면 총 감사 건수의 30~40% 정도가 줄어들게 된다. 현재 감사반연합회 소속 공인회계사는 1200명 정도. 감사반은 300여개로 한 감사반이 3~4명의 회계사로 구성된 형태.
감사반연합회 관계자는 "사실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좀 참으면 되는 일"이라며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감사를 하지 말라고 해 엉터리로 가자는 것은 불투명한 사회로 가는 것이라 걱정"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감사반의 수익은 감사보다는 세무를 많이 하기 때문에 감사 대상이 축소된다고 해도 크게 영향은 받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한 중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 대상이 축소돼 회계법인의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며 "우리 법인의 경우도 2억원 정도의 수익이 줄어들지만 이 문제를 회계법인의 수익감소로만 보는 것은 본질을 잘 못 짚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소형 회사가 외감으로 비용 부담이 커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몰고가는 것은 문제"라며 "(현재 중소기업들이 더 바라는 것은)각종 규제 등 정부의 간섭이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영업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오형 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외감 대상 축소는 발상이 잘못된 것"이라며 "적극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의 외감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외감 수수료에 대해 세액공제를 하거나 외감 법인에 대해 대출금리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내부회계관리시스템…대형 VS 중소형 반응 엇갈려= 반면 회계업계에서는 내부회계관리시스템 적용 대상 기업을 축소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대형회계법인과 중소형회계법인의 반응이 엇갈렸다.
대형회계법인 관계자는 "자산 규모 70억원의 기업들은 투명성 한계기업들로 대부분의 문제가 이들 기업에서 나오고 있고, 1인 사주들의 개인적인 주장에 의해 기업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내부회계관리시스템은 기업의 부담을 줄 수는 있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간략하게 적용된다"며 "자산규모 1000억원 이상만 적용하는 것은 기업 투명성 확보를 도외시한 처사"라고 덧붙였다.
감사반연합회 관계자는 "내부회계관리시스템의 경우는 하지 말자는 주의"라며 "비용대비 효익이 없어 좀 큰 기업에 한해서만 하면 된다"고 내부회계관리시스템 적용 대상 축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소회계법인 관계자도 "(엔론사태로 인해 만들어진) 미국의 사베인옥슬리법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중소형 회사의 경우 사장과 경리 등 밖에 없는데 내부통제를 만들 수가 없다"며 "대상을 자산 기준 1000억원으로 상향하는 것은 맞는 일"이라고 밝혔다.
□실질관계 따져야…"자산기준은 문제"= 외감 대상이나 내부회계관리시스템 적용 대상 기업을 단순히 자산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회계제도 선진화를 위해 자산규모 100억원으로 외감대상을 축소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라며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자산 기준 50억원 이상을 외감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자산만 기준으로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며 "200억원의 건설임대업을 하는 업자의 경우 자산만으로 따졌을 때 외감대상이 되지만, 임대 수수료등의 매출액이 적거나 이해관계자가 1인일 가능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또한 삼일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임대업의 경우 자산 규모 500억원 이상만 외감을 받아도 된다"며 "자산 규모가 60~70억원에 불과해도 기업 영업 성격상 이해관계가 많은 기업에 대해 이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청회·간담회는 형식일 뿐…"업계 목소리 반영 안 돼"= 정부는 외감 대상 축소를 놓고 6월 초 공청회를 개최했다. 지난 25일에는 시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김종창 금감원장과 회계법인 대표 등이 오찬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공청회에서는 외감 대상을 축소하는 것에 대해 '회계인프라 구축의 역행', '비상장기업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을 이유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한 외감 대상 기준을 단순히 자산규모로만 결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해관계자가 많거나 상장됐거나 등의 기업의 실질 관계를 따져 외감 대상을 확정하는 등의 논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다수의 의견이 나왔던 것.
그러나 주요 정책에 대해 국민의 여론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한 공청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공청회에서 주로 논의된 내용은 법 개정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25일 김종창 금감원장과 회계법인 대표 및 공인회계사회 간부 17명의 오찬간담회에서는 외부감사 축소 저지에 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김 원장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김 원장과 회계법인 대표들과의 만남은 원장이 취임할 때부터 밝힌 시장 친화적이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차원에서 이뤄졌지만, 사실상 금감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회계업계에서는 "정부에서 최근 외부감사제도를 규제로 판단하고 규제완화 차원에서 외감대상 기업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회계감사는 경제활동의 인프라라는 측면에서 감사 대상 기관을 줄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원장은 "금융위에서 검토 중"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상당한 정부의 검토가 진전됐고, 감사 대상이 되는 중소기업의 불만이 팽배해 어느 정도 완화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답했다.
한편 회계의 주무부처라고 할 수 있는 금융위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은행, 보험, 증권, 서민금융 등의 대표들과 간담회를 개최해 시장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회계업계 대표들을 만난 적은 없어 주무부처의 인식이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