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청장의 뇌물 수수 수법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청장은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에게서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에 힘을 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19억 원짜리 아파트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그러나 뇌물을 직접 받지 않고 친분이 있는 건설업자 K씨에게 "삼성동 인근에 55평 아파트를 알아 보라"고 '지시'했으며 K씨는 프라임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공사를 수주하는 조건으로 프라임그룹 계열사 프라임상호저축은행에서 20억 원을 무담보로 대출받아 이 전 청장이 지목한 제3자 명의로 아파트를 사는 수법을 썼다.
이 전 청장은 이밖에도 K씨 소유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하면서 자신의 아내가 백화점에서 고른 외국산 명품 목록을 K씨에게 준 뒤 가구와 오디오 등 5천800여만 원어치를 챙겼고 명절에는 주요 인사의 명단을 주고 수 천만 원대의 선물을 대신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가히 영화에서나 봄직한 범죄 수법들이다. 하긴 세무공무원 31년 관록이 결코 녹록할 리 없다. 실제로 이 전 청장은 재작년 6월 인사 투서와 부동산 투기설 등이 분분한 가운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갑자기 현직에서 물러났고 최근에도 신성해운 비자금 조성 및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결정적인 꼬투리는 잡히지 않았다.
수장이 이 정도라면 그 기관의 기강은 능히 알조다. 아무리 혁신과 청렴을 강조한들 청장들이 이 모양이어서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만만한 국민과 기업을 윽박질러 뇌물을 받아내고 윗사람에게 상납하는 관행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얘기를 헛소문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것도 그래서다. 바로 지난해에 전군표씨가 국세청 개청 이래 첫 현직 청장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기록한 것도 지방국세청장에게서 받은 '관행적 업무협조비'라는 해괴한 명목의 뇌물이 탈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비단 이 전 청장만 문제였겠느냐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뭐라 하기도 어렵다.
국가 재정의 85%를 책임지는 국세청의 기강은 국가 존립과도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국세청이 진정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비리가 스며들 수 없는 엄격한 내부 통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같은 식구'라는 온정주의부터 내쳐야 한다. 비리에 연루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리는 것만이 구겨질대로 구겨진 국세청의 자존심을 되찾고 국민 곁으로 되돌아가는 지름길이다. 특히 청장 한 명의 잘못으로 1만8천여 국세공무원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청장의 독선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