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행.감독당국 '눈치보기' 극심
기업과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을 감시해야할 감독 당국까지 나서 기업대출을 확대하라는 압박을 하면서 기업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3년간 지속된 저금리 상황으로 인해 비즈니스 모델없이 외형만 팽창하는 거품이 경제 곳곳에 형성됐는데도 위기 상황에 이르러서도 제거되지 않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부실 기업들을 퇴출시키는데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으며 금융감독당국도 부실 기업의 정리에 적극 나서지 않은 분위기다.
금융기관들은 모든 건설사를 대상으로 하는 대주단(채권단) 협약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구조조정에 들어간 회사는 지난 4월 단 1개에 그쳤다. 금융당국은 100대 건설사 가운데 우량한 곳은 빼고 대주단 협약에 가입시켜 자금 지원과 구조조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건설사가 가입할지는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은행들이 채권기관으로서 단독으로 기업들에 대한 `옥석가리기'에 직접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적극적인 기업 퇴출이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증폭해 경제를 실제 이상의 위기로 몰고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다 정부가 나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과 감독당국 모두 책임감을 갖고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출돼야할 기업들이 계속 남아있는 것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가중하면서 갈수록 위기의 수위를 높이는 문제가 있다. 특히 은행에 대해서는 한국은행 등을 통해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만큼 자칫하다가는 국민들이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평소 같으면 회생 불가능한 기업은 퇴출시킬 수있었으나 최근에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라는 정부와 사회의 압력이 거세기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기업들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시킨다는 것은 의미가 없고 경제에 부담을 주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배상근 박사는 "정부가 유동성 공급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기업들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제대로 안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는 한국경제에 또다른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최근 내놓은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KDI는 "금융안정화 정책이 금융기관의 부실 경영이나 투자 손실에 대한 인위적인 보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차단해야 한다"면서 "단기적 증시 부양책은 지양하고 금융기관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경우에는 적절한 벌칙 금리 부과, 경영진에 대한 문책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KDI는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대출로 인해 부실화된 금융기관은 신속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공개적으로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경제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기업들의 유동성 부족 문제가 심각한 때에 구조조정에 나서면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금융권과 서민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기업.금융기관 구조조정은 경제가 정상 상태를 되찾았을 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