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보류된 이슬람채권 관련 세법 개정안 설명
지난 7일 저녁 기획재정부 세제 관련 고위 공무원들이 여의도로 총출동했다. 신년인사차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국회의원들과의 저녁 식사 모임을 위해서다. 하지만 2월 국회에서 다뤄질 법안에 대한 설명의 자리도 곁들여졌다는 게 참석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국회 재정위에 상정된 법안 중 가장 큰 관심사는 `이슬람 채권(수쿠크) 발행`을 위한 세법 개정안이다. 정부는 이슬람권으로부터의 자금 유치에 걸림돌이 되는 세법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슬람 채권 수익을 일반 외화표시채권과 같이 이자소득으로 분류해 법인세를 면제하는 세제개편안은 지난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슬람 채권은 이슬람 국가들의 독특한 금융기법이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이자를 받을 수 없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때문에 이슬람 자본은 율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실물투자 형식을 빌려 대출이나 투자를 한다.
실례로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권이 주택자금을 빌려줄 때 통상적으로 직접 자금을 대출해주고 거기에서 이자를 받는다. 하지만 이슬람권에선 해당 주택을 금융권이 직접 매입한 뒤 채무자에게 집을 빌려주고 원리금 대신 사용료를 받는다.
문제는 형식적이라도 실물 거래가 생기면 양도세와 부가가치세, 취득세, 등록세 등 각종 세금이 붙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이런 세금을 모두 면제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내 일부 의원들이 이슬람 채권에만 세금 특혜를 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심의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소득·법인세율 인하와 임시투자세액 공제 같은 첨예한 문제가 많으니 다음 국회로 넘겨 심의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이슬람채권 관련 세법 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로 미뤄졌다. `테러자금으로 유입될 가능성`이라든가 `타 종교 반발`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초까지 관련 법 정비를 마치고 상반기까지 오일 머니를 끌어 오기 위한 준비를 해 오던 정부와 금융사, 기업들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당혹하고 있다.
모 은행 임원은 "전 세계 각국이 중동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세금 감면 등 제도를 마무리하거나 이미 채권을 발행한 상태"라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실제 영국은 이슬람금융 면허를 취득한 은행을 개설했고, 일본은 이슬람금융상품 도입을 위해 은행법을 개정해 5억 달러 규모의 이슬람채권을 발행했다.
정부는 의원들을 설득해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법을 통과시키는 데 총력전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경제정책 결정에 종교적인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어 정부로선 고민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외화 조달 창구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슬람채권 발행은 매우 의미 있는 사안"이라며 "특혜, 형평성 문제에 대해 의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지만, 종교적인 시각이 개입돼 이 법안을 다룬다면 정부 입장에선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