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중징계부터 하고 보자, '아니면 말고 식'의 국세청 징계권 남용 행태가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김동일 前나주세무서 직원 사건이다.
지난해 5월 국세청 내부통신망인 '나도 한마디' 게시판에 '나는 지난 여름에 국세청이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글을 올려 같은 해 6월 국세청으로부터 파면통보를 받은 김동일 前나주세무서 직원이 국세청 징계에 반발,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청심사에서 '해임' 결정을 받았다.
중징계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번 결정은 국세청이 당초 김 씨에게 내렸던 징계수준인 파면보다는 한 단계 수위가 낮아진 결정으로 김 씨는 퇴직금 및 연금 수령이 가능해졌다.
그 동안 공직에 봉사한데 따른 최소한의 '권리'는 되찾았지만 국세청 조직원으로 복직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향후 3년간 공무원 재임용이 제한되는 등 사실상 공무원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
김 씨 사건과는 별개지만, 국세청은 이에 앞서 지난해 납세자의 날 모범납세자 선정과정에서 모범납세자 자격규정에 미달하는 부적격한 업체를 선정했다는 이유로 광주국세청 소속 담당 관리자에게 중징계 방침을 세워 중앙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그러나 중앙인사위원회는 징계절차를 거쳐 '불문경고' 수준에 그치는 최종 징계방침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국세청 안팎에서는 김 씨의 사건을 비롯해 최근 들어 국세청이 '일단 징계부터 내리고 보자'는 식으로 징계권을 남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 국세청, 김씨 '파면'이 최선이었나?= 최근 국세청 안팎에서는 김 씨에 대해 국세청이 파면 결정과 함께 법정공방까지 몰고 간 것과 관련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연 파면만이 '최선'이었느냐는 것이다.
광주지방국세청은 지난해 5월 나주세무서 직원이었던 김씨가 국세청 내부게시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한상률 前 청장의 책임과 함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이유를 밝힐 것'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자, 공무원 품위유지 규정 위반 등의 이유를 들어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당시 국세청 직원들은 자유로운 의견개진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린 이유로 김 씨가 파면을 당한 것에 대해 상당히 격분했다.
이는 국세청 직원들만 이용하는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특히 김씨의 경우 이번 글보다 결코 낮지 않은 수위의 글을 수 차례 게시판에 올렸어도 징계되지 않았던 점이 감안돼 경고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파면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고, 예상치 못한 중징계 방침에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잇단 성명발표와 인터넷 카페 등에서 김 씨를 구명하기 위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민변)들도 변론에 나서는 등 사건의 파장이 확대되면서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김 씨에 대한 중징계 방침이 내려진 이후 국세청 직원들이 자유롭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내부게시판에는 조직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의 글들이 현저히 줄면서 직원들간 거침없는 자유토론의 장이 되어야 할 '나도 한마디' 코너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검찰 고발까지 갈 필요 있었나= 광주지방국세청은 김 씨에 대해 공무원으로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파면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면서 국세청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김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이에 대해 광주지역 시민단체와 인터넷 등에서는 단순한 내부 게시판에 비판의 글을 올린 사람을 파면한 것도 심한데 검찰 고소까지 하고 나선 것은 당사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당시 김씨의 사건수사를 담당했던 관할 경찰서도 수사결과를 내고 '명예훼손의 당사자인 한상률 前국세청장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고 피해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진술 등을 확보할 수 없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피해 상황 또한 모호해 처벌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김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무혐의'처분을 내린 경찰조사와는 달리 지난 7일 국세청 소속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광주지방국세청의 고소와 관련한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한 전 국세청장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만을 인정해 김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결과적으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된 김 씨 사건이 법원 판단에 맡겨지면서 국세청 안팎에서는 조직 내부의 싸움이 외부로까지 확대됨에 따라 '집안의 치부를 만천하에 들춰내는 꼴로 변질됐다'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학동마을' 그림로비 사건, 안원구 국장의 진실게임 등 굵직굵직한 사고는 형님(고위직)들이 쳤는데, 정작 이들의 잘못을 비판한 막내동생(하위직원)은 집에서 쫓겨난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 김 씨의 향후 행보는= 한편 행안부 소청심사위원회로부터 해임결정을 통보받은 김 씨는 행정소송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게다가 광주국세청이 김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법정다툼도 남아 있어 이제 김 씨 문제는 제2라운드 공방을 앞두고 있는 형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