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업계-"해당 제품 극소수, 영향 미미"
에너지 절약 차원 조세정책…'실효성' 의문
내달부터 에너지 효율이 낮은 대형 냉장고와 에어컨 등 전자제품에 5%의 개별소비세(이하 개소세)가 부과된다.
정부가 이 같은 조세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해 전력을 과다하게 소모하는 전자제품에 세금을 매겨 가격을 끌어올려 어느 정도 소비를 억제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의 취지와는 달리 전자제품 업계에서는 개소세 부과에 따른 가격변동은 사실상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벌써부터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달 출고되거나 수입 신고되는 일정 소비전력량 이상의 냉장고, 드럼세탁기, 에어컨, TV등 4종류 전자제품에 대해 5%의 개소세가 부과된다. 과세는 오는 2012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품목별 개소세 부과기준은 ▲냉장고-월간소비전력량 40kWh 이상(용량 600리터 이하 제외) ▲드럼세탁기-1회 세탁당 소비전력량 720Wh 이상 ▲에어컨-370kWh 이상(정격냉방능력 10kW 이상 제외) ▲TV-정격소비전력 300W이상(42형 이하 제외) 등이다.
에너지 다소비품목에 대한 과세강화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지만, 동시에 중소·서민층의 부담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기 때문에 과세대상은 소비전력량이 높은 상위 10%로 제한했다.
또한 소비전력량이 냉장고, 세탁기보다 높은 전기보온밥솥, 컴퓨터 등은 중산·서민층이 주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애초부터 과세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과세대상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측면에서 전자제품 업계에서는 과세가 시행되더라도 가격변동 등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이상과 현실이 상충되면서 과세대상이 축소, 이도 저도 아닌 빈껍데기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 전자제품 업계 "별다른 영향 없다"= 내달부터 일정 소비전력량 이상의 에어컨 등 4가지 제품에 5%의 개소세가 과세되더라도 전자제품 업계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일단 개소세 대상에 해당되는 제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
예를 들어 드럼세탁기의 경우 기술발달로 에너지 효율이 좋아져 현재 출시되는 제품 중에는 개소세 대상이 될 만한 소비전력량을 가진 제품이 아예 없고, 냉장고의 경우에는 현재 시중에 출시된 제품 중 1개 기종만이 개소세 대상에 해당된다는 설명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냉장고의 경우 1개 기종이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고, 드럼세탁기는 아예 없다. 드럼세탁기는 과거 에너지 효율이 좋지 않아 문제가 됐지만, 기술력이 좋아져 최근에 생산되는 제품들은 개소세 부과 기준에 해당되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에어컨의 경우도 LG전자는 거실크기 기준으로 23평형의 스탠드 에어컨이 개소세 부과 기준인데 통상 14평형~18평형이 주로 판매되기 때문에 애초부터 소비억제 등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전자제품 제조업체 외에 판매업체들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개소세 부과기준이 발표된 이후 관심 있게 지켜봤지만, 제조업체 제품들이 기준을 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밝혔다.
□ 비판 무릅쓰고 시행‥"실효성 의문"= 에너지 다소비품목에 개소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은 제도가 발표된 이후부터 계속해서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소비전력량이 많은 제품에 과세를 하려고 했다면 전기보온밥솥, 컴퓨터 등도 과세대상에 포함해야 했지만, 중소·서민층의 부담을 늘리면 안 된다는 이유로 아예 제외됐다.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전기보온밥솥과 컴퓨터는 전력사용비중이 각각 8.2%, 6.5%이나 과세대상인 냉장고나 세탁기는 6%, 3.8%로 전기밥솥이나 컴퓨터보다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개소세 부과 기준인 에너지 다소비품목이 국가 전체 에너지 소비량에 1%밖에 되지 않는 '가정용'이라는 점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데 적절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대목으로 남아있다.
개소세 과세대상인 에어컨 등 4가지 품목 중에서도 아예 생산되지 않거나 판매가 저조한 제품에만 과세되기 때문에 당초 연간 1000억원의 세수를 확보, 사회복지법인 등에 LED모니터 등을 보급하는 등 에너지 저소비 품목의 사용을 확대한다는 계획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 지도 불투명 보이는 상황이다.
한편 에어컨 등은 지난 1999년과 2004년에 사치품이라는 이유로 특별소비세(이하)가 과세됐다가 폐지됐으나, 이번에는 에너지효율이 낮다는 이유로 개소세가 부과된 것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지금의 개소세가 특소세에서 이름과 목적이 변경됐다는 점에서 외부불경제를 일으키는 품목에 세금을 더 부과하겠다는 취지는 이해되나, 아직도 고급사진기, 모피 등이 사치품이라는 이유로 개소세가 부과되는 점을 생각하면 '개소세'는 사실상 목적이 불분명한 세금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