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특허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40건 이상의 스마트폰 소송이 물고 물리는 가운데 글로벌 IT기업들이 저마다 '밀리면 망한다'며 사활을 건 특허전쟁에 나서고 있다. 특허 '세계3차대전'으로까지 불린다.
특히 두 스마트폰 거인 애플과 삼성전자 간의 특허소송은 글로벌 법정싸움으로 번지면서 갈수록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단일 기술 분야에서 이토록 광범하게 물고 물리는 '특허대전쟁'은 특허제도가 생긴 이래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에는 전자통신 및 컴퓨팅기술이 고도로 집적돼있다. 이 때문에 '특허 뭉치'라고 할 정도로 무수한 특허들이 서로 엉키고 맞물려 특허분쟁의 소지가 많고 내용도 복잡하다.
스마트폰의 매출은 전세계적으로 매년 1조달러를 초과하는 데 반해 이윤폭은 갈수록 줄어들고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특허 라이선싱 로열티를 받아 이익을 늘리거나, 경쟁업체가 특허사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토록 만들어 경쟁업체를 누르는 일이 생존전략처럼 인식되고있다.
소송의 승패를 떠나 전방위적인 특허공격은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브랜드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수단도 된다.
애플과 삼성 간 스마트폰 특허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은커녕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분위기다.
애플은 지난 4월15일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와 태블릿PC가 자사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비굴하게 베꼈다'(slavishly copies)며 애플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제소했다. 디자인과 상품 외장(外裝)을 뜻하는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특허, 둥근모서리, 통화․메시지․사진 등의 아이콘, 사용자환경(UI), 겉포장 등의 유사성을 주장하며 모두 16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세계적 IT업체들은 주로 제품의 기능을 놓고 특허소송을 벌여왔다. 제품의 외관을 뜻하는 트레이드 드레스나 디자인은 모방제품에 소송을 걸 때 문제 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자신들이 핵심자산으로 여기는 독창적 디자인을 삼성이 모방했다고 판단하고 소송을 통해 삼성제품을 '짝퉁'으로 격하시켜 삼성 이미지에 타격을 가하려 나선 것이다.
삼성의 역공(逆攻)은 신속했다. 애플이 제소한 지 6일 만에 삼성전자는 자사의 통신특허를 애플이 침해했다며 한국 독일 일본 3개국 법원에 애플을 맞제소한 것이다.
침해사례는 데이터를 전송할 때 전송효율을 높이는 고속패킷전송방식 통신표준특허, 데이터를 보낼 때 수신오류를 감소시키는 WCDMA 특허 등 10건에 달한다. 애플은 휴대폰 제조에서 후발주자다. 아이폰 역시 기존 휴대전화기술을 따올 수밖에 없었으므로 통신 분야 특허공세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약점을 노린 것이었다.
삼성전자는 나아가 4월27일 미국법원에 애플을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터치패널 문자입력방법에 관한 특허, 부드러운 화면전환에 관한 특허 등 10건을 문제 삼았다. 미국법원에서 애플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방어'와 함께 애플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공격'을 병행한 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양사는 서로 으르렁대다 이해관계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합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6월24일 애플이 갤럭시S를 모두 폐기하라고 서울중앙지법에 특허침해 맞소송을 제기하고, 29일 삼성이 미국 아닌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하는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 등에 대한 미국반입을 막아달라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함으로써 2라운드 확전국면에 들어갔다.
애플은 아직 삼성에 대해 ITC 제소를 하지는 않았지만 노키아나 모토로라, HTC와의 소송에서는 통상적으로 ITC 제소를 한 선례들이 있어 삼성의 ITC제소는 이를 감안한 선제공격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송전은 미국 3곳(ITC, 노스캐롤라이나, 델라웨어), 아시아 2곳(일본과 한국), 유럽 3곳(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3대륙, 6개국, 8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선이 확대일로다. 애플이 이미 부품업체로서 삼성전자를 버리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들이 나오는 가운데 양자 간 협력관계에 '추한 결별(ugly divorce)'이 예고되기 시작했다.
이에 애플은 삼성전자의 최신 모바일기기 4종에 대한 미국 내 판매금지 가처분소송제기로 즉각 맞섰다. 애플은 갤럭시S2와 갤럭시탭 8.9 등도 출시되면 자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판매금지 가처분소송을 추가로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사 간에 화해를 점쳤던 특허전문가들도 이쯤 되면 '서로 막가는'(from bad to bold) 것 아니냐고 우려를 내놓는다.
ITC는 연방법원에 우선하는 기관이고 ITC제소에서 이긴다면 세관으로 하여금 상대방제품의 미국 내 반입을 막을 수 있다. ITC가 제소를 받아들여 최종 판정까지는 통상 12~15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화해를 위한 시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애플이 캘리포니아북부법원에 낸 판매금지가처분신청은 그 결과가 ITC결정 이전에 나올 수도 있다. 가처분소송은 소송가운데서도 관계를 회복하기 가장 힘든 소송이다. 파산한 기술거인 노텔의 기술을 최근 대거 확보한 애플이 취약한 통신기술을 단숨에 보강해 회심의 반격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지난 3일 소송역량을 집중하기위해 캘리포니아법원에 제소한 맞소송 중 일부를 취하했다. 중복된 소송을 정리해 행정절차를 줄이자는 판사의 권고때문이라지만 동일한 성격의 소송을 복수로 진행하기보다는 애플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반소'(counter claim)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원래 맞소송은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이 있거나 서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자는 의도에서 제기된다. 애플과 삼성 둘 다 '루비콘강'을 건넌 느낌이다. 최고수준의 변호인단 구성과 막대한 소송비용 등 소모전의 장기화도 예상된다.
이 와중에 미국특허청은 지난 22일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사용 중인 애플의 터치스크린기능에 대한 특허를 인정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키우고 줄이거나, 정전기를 이용한 멀티터치 인터페이스기술의 애플소유권이 인정되면서 스마트폰업계에 특허경보가 울리고 있다.
애플은 노키아와의 소송에서 사실상 패배해 9억 달러 이상의 로열티를 지불하게 됐지만 노키아가 이 승리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계열 업체들에 대해 대거 소송에 나설 것이 확실시돼 안드로이드 계열 업체들을 간접 견제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게다가 MS(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와 손잡으며 윈도우폰7을 노키아폰에 깔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이 두 특허파워가 구글과 안드로이드 진영 제조업체들을 압박해 와해를 노리는 등 전황은 사면초가다. 제아무리 탄탄한 특허포트폴리오를 쌓아둔 삼성이라지만 지나친 자신감이나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