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의 경영실적이 사상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국내 자동차시장 침체와 유럽발 재정위기 속에서도 올 1분기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률 11%를 돌파했다. 주가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26만원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하나같이 '매수의견'을 내며, 현대차의 무한질주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를 둘러싼 경영여건은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우선 올해부터 메이저 업체들이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해 경제성 높은 신차를 집중적으로 선보이며 대반격에 나선다. 토요타자동차의 리콜사태에 이어 일본 대지진 여파로 얻었던 반사이익도 상쇄되고 있다. 현대차 내부사정을 봐도 급성장의 여파로 높아진 부채비율과 여전히 불안정한 노사문제 등 불안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잘 나갈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량기업인 현대차에 위기요인은 없을까. <조세일보>가 집중 탐사해 봤다. [편집자 주] |
가격은 올려야겠는데…가격경쟁력 잃을까 '노심초사'
눌러왔던 가격인상 압박요인, 지금까지는 잘 견뎌왔는데…
탄력 잃은 손익구조, 경쟁․환경변화 대처에 한계 봉착했나
현대자동차가 지난 1일 그동안 가격결정을 못하고 미뤄왔던 '싼타페' 신차 가격을 드디어 발표했다.
지난달 19일 신차발표회를 열어 4년4개월 동안 총 4300억원을 투입해 만든 신형 싼타페를 출시하고도 막상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지난 2주 동안 1만8000명이 넘는 사전예약자들을 불안하게 했다.
현대차가 신차가격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관련 업계에선 외부경쟁력과 원가구조로 인해 현대차 내부의 영업부서와 재무부서 사이의 의견 불일치 때문이라는 등 분분한 해석이 많았다.
현대차는 지난 5년 동안 인건비와, 금융비용 등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판매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최근 원재료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회사 내부적으로 상당한 가격인상 압력요인이 있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토요타, 혼다 등 경쟁업체들이 최근 국제금융위기에 대응하여 신차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는 것.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과 경쟁측면만 고려하면 적정가격을 유지해야 하지만, 반대로 높아진 비용을 보전하려면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신차를 내놓고도 쉽게 가격을 결정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눌러왔던 가격인상 압박요인, 지금까지는 잘 견뎌왔는데…
현대차에 따르면 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주요 원재료인 철판가격은 지난 5년간 94%나 상승했고, 그 사이 직원 연봉도 34%나 올려 줬다. 반면 차량 판매가격은 아반떼가 16% 정도 상승하는데 그쳤고, 쏘나타와 그랜저, 산타페 등은 3~7% 인상했다.
현대차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대는 GM과 포드 등 전통 미국 자동차 메이커와 최근 10년 사이 비약적 성장을 한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메이커, 나아가 최근 중소형 부문을 확대하고 있는 독일의 자동차 명가들이다.
이들 업체들은 모두 품질과 디자인, 인지도 면에서 앞서기 때문에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현대차는 지금까지 가격 경쟁력으로 이들과 시장을 다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중형 부문에서 10~25%, 대형에서 20% 내외의 낮은 가격은 현대차가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데 주효한 무기였다.
그러나 원재료비와 인건비 등이 높은 상승세를 보이면서 판매가격 인상에 대한 압박요인이 되고 있고, 이는 결국 현대차의 가격정책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탄력 잃은 손익구조…경쟁 환경변화 대처에 한계는 없을까
현대차가 신차 판매가격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원가상승 요인 가운데 고정성 비용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정성 비용이란 판매량의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비용을 말하며 ▲노조로 인해 감축이 어려운 인건비 ▲생산과 직접관련이 없는 지원부문의 관리비 ▲차입금에 따른 금융비용 ▲생산시설 유지관리비 등이 이에 속한다.
현대차는 지난 5년 동안 고정비용인 인건비가 38%, 일반관리비가 52%, 금융비용이 81%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이들 비용이 전체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9%나 된다. 비용의 절반이 판매량과 관계없이 거의 대부분 그대로 지출돼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금융위기에 따라,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은 올해 신차 컨셉을 경제형, 슬림형에 맞추고, 출시 가격까지 경쟁적으로 인하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엔고 및 리콜사태로 지난 2년 시장을 많이 빼앗긴 일본 업체들의 경우 더욱 뚜렷하다.
현대차도 그동안 애써 확보해 놓은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인하하고 신차의 컨셉을 경제상황에 맞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지난 3월에 출시한 뉴그랜저와 이번에 출시한 산타페 모두 오히려 사양을 고급화하고 그랜저는 가격을 20~25% 올려 출시했다. 이번 싼타페의 경우도 신차를 출시했을 때 시장에서는 10% 내외의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가격 결정이 늦어지면서 지난 2주 동안 인터넷 자동차동호회 게시판에는 산타페의 품질과 가격에 대한 논란이 한창 진행됐다.
동호인들은 "가격을 내놓지 못하는 건 아직도 품질에 자신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냐"라는 의문과 함께 "3400만원이 넘어가면 폭스바겐 티구안 등 수입차로 간다"는 등의 의견들을 내놓았다.
결국 현대차는 이번 싼타페 신형 가격을 차종에 따라 1~3% 올리는데 그쳤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러한 가격정책에 대해 "품질을 높이기 위해 가격 상승요인이 발생했으나 최근 시장이 침체되어 가격 책정에 고민이 많았다"며 어려운 속사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 일본 등 메이저 업체들의 가격 인하에 대해서도 "일본 업체들은 마진폭이 크기 때문에 가격인하가 가능한 것"이라며 경쟁사들의 가격전략에 정면으로 대응할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업계관계자는 "문제는 현대차의 가격인상 요인이 이번 신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발생한 원가상승과 오랜 기간 판매가격을 인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구조적인 것일 수도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손익구조의 문제점을 지목했다.
업계에선 원가가 상승했는데도 쉽게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현대차 자신이 누구보다 더 답답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판매가격도 자신있게 책정하지 못하면서 인건비, 관리비, 금융비용 등 통제가능 비용마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현대차에 대해 주변의 우려는 더 커지는 모습이다.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시장에서 이번과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된다면 그동안 어렵게 얻은 고객들의 신뢰와 브랜드 이미지 마저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