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판매수수료 인하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웠던 대형유통업체와 경쟁당국 사이에 2차전이 예고되고 있다.
실제 현장조사결과 대형유통업체들이 거래금액이 작은 일부 중소업체들에게만 판매수수료를 내리는 등 '숫자 맞추기', '보여주기' 식으로 내린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유통업체들에게 추가적인 판매수수료 인하방안을 촉구하는 한편, 이를 빌미로 판촉비나 인테리어 비용 등을 전가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3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수수료 인하 합의안에 따라 롯데, 현대, 신세계 등 3대 백화점을 포함한 11개 대형유통업체들은 2272개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연간 약 358억원 수준의 판매수수료를 인하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 롯데·현대·신세계 등 3개 백화점이 185억원,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3개 대형마트가 129억원, GS·CJO·현대·롯데·농수산 등 5개 TV홈쇼핑 업체가 43억원을 각각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결과 대부분의 유통업체들이 매출액 감소 등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거래규모가 작은 소규모 납품업체 위주로 판매수수료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수수료가 내려간 중소업체들의 1년 간 평균 거래금액은 1억원 미만이 백화점 16%, 대형마트 20% 수준이었고, 대부분이 10억원 미만(백화점 86%, 마트 94%)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 지철호 기업협력국장은 "판매수수료 인하가 대부분 소규모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이뤄져 소위 숫자 맞추기식, 무늬만 인하하는 효과를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공정위가 재차 판매수수료를 낮추라고 나선 이유는 무엇보다 당초 합의안과 달리 판매수수료 인하효과가 생각보다 미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김동수 공정위원장과 11개 대형유통업체 CEO들은 간담회를 갖고, 중소입점업체에 대한 판매수수료를 3~7%p 내리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대형유통업체의 판매수수료율 수준은 평균 30~40%대에서 형성됐기 때문에, 합의안대로 판매수수료를 낮출 경우 연간 1000억원 상당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실제 조사결과 유통업체들은 거래규모가 작은 기업만은 선별해서 수수료를 내려 당초 계획보다 수수료 인하 폭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는 3개 백화점, 3개 대형마트 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중소 업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판매수수료 재검토를 요청한 상황이며, 5개 홈쇼핑업체에 대해선 연말까지 판매수수료 인하 여부를 점검하는 등 판매수수료를 내리기 위한 2단계 작업에 돌입한 상황이다.
특히 공정위는 판매수수료 인하에 따른 '풍선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예켠데 대형유통업체들이 판매수수료 인하에 따른 매출액 감소를 복구하기 위해 판촉비를 올리거나 인테리어 비용을 전가하는 등 추가 부담으로 손익을 메꿀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이다.
지철호 국장은 "일부 백화점 등에서 반품이 쉬운 특정매입 거래형태를 여전히 높은 비율로 유지하고 있으며 인테리어 비용도 추가 부담시키는 사례가 발견됐다"며 "그동안 수수료 인하 실태조사나 현장조사 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선 추후 과징금 등 시정조치를 내릴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체 일각에선 볼 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반성장 협력 차원에서 작년에 이미 판매수수료를 이미 낮췄는데 또 다시 낮추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압박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판매수수료 인하는 회사 임의대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당초 공정위와의 합의대로 인하대상 등이 선정됐다"며 "공정위 발표내용을 추가적으로 살펴봐야겠지만, 임의대로 판매수수료율을 더 높이거나 혜택대상을 축소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미 몇몇 업체들과 추가적인 판매수수료 인하방안에 대해 대체로 합의를 마친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향후 공정위와 대형유통업계 사이에 또 다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