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사업구조개편 4개월만에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농협금융지주 출범과 함께 국내 5대 금융지주체제로 재편될 것이라는 예측은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으며, 신충식 전 지주회장겸 은행장이 98일만에 지주회장직을 사임하고 급기야 출범 4개월만에 조직을 중앙회 위주로 뜯어 고쳐지며 과거 회귀적인 모습까지 보여 주고 있다.
농협은 최근 지주사와 은행 일부 본부를 통합·축소하고, 홍보조직을 중앙회로 귀속시켜 일원화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농협은행의 경우 기존 13개 본부가 9개 본부로 통폐합되고, 개인고객본부와 기업공개본부가 합쳐져 고객사업본부로, 공공금융본부와 농업금융본부는 공공농업금융본부로 통합됐다.
또 자금운용본부와 투자금융본부는 자금운용본부로, 경영지원본부와 HR본부는 경영지원본부로 각각 흡수된다.
이는 국내 시중은행들이 기업금융과 개인금융에 차별화를 둬 각각의 틈새시장 공략에 역주하는 모습과는 정반대된 모습이다.
더불어 은행 홍보팀은 기존 '국'에서 '팀'으로 조직이 축소되고, 언론홍보팀과 홍보전략팀은 1개 팀으로 통합돼 금융지주 홍보팀과 함께 중앙회 홍보실에 입주하게 됐다.
농협에서 내세운 조직개편 이유는 조직 슬림화다. 비효율적인 조직을 통합해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농협 중앙회 관계자는 "농협의 사업구조개편 이전부터 기존 금융지주사들의 조직들을 모델로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며 "이번 사업구조 개편은 그동안 조직운영이 방만하다는 지적이 많아 조직을 슬림화해 인력 배분에 효율성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지난 4개월 동안 진행해 온 사업구조개편이 결국은 우왕좌왕하는 모습 속에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허권 농협중앙회 노조위원장은 "최근 진행하고 있는 조직개편은 농협 스스로 사업구조개편의 실책을 인정했다는 방증이다"며 "이 같은 조직개편은 경영진의 무책임과 무소신을 보여주는 단면이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농협의 사업구조개편은 농협 조직을 농민에게 돌려 주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경제부문과 금융부문을 분리한 뒤 시장에 경쟁력을 갖추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경제부문에 대한 지원을 늘려 나가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사업구조개편이 단행된 이후 농협은 당초 취지에 맞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농협과 농림식품수산부와 맺은 경영개선계획 이행약정서(MOU)는 협동조합의 존립기반을 흔들고 있으며, 최근 신동규 회장으로 선장을 바꾼 농협금융지주의 경우 중앙회와 경제지주의 산하조직으로 그 위세가 크게 초라해 지는 모양새다.
더구나 사업구조개편을 시간표에 맞춰 서둘러 진행하며 곳곳에서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기로 한 농금채 4조원에 대한 이자보전비용 1600억원과 현물출자 등은 아직도 교통정리 중이다.
또 은행은 자기건물의 50% 이상을 임대하지 못하게 한 은행법을 어겨 상당수 건물의 재매각할 처지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추가로 100억원 상당의 취득세와 등록세를 물게 되는 처지에 빠지는 등 아마츄어 같은 사업구조개편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출범 4개월만에 사실상 옛 농협중앙회 시절 조직으로 회귀한 이번 조직개편을 두고 불안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