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걸(Alpha Girl)'.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중 어느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내는 엘리트 여성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요즘 주변에서 이처럼 알파걸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조사와 심사 등 어렵기만 한 업무가 많은 관세청에도 알파걸들이 있다. 특히 최근 관세청에서 적발한 단일 품목 가운데 가장 많은 금액인 무려 1조4000억원 상당의 불법외환거래 물품을 적발한 일등공신도 '여성'이었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 외환조사과에서 근무 중인 손민아 반장(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손 반장은 어마어마한 실적을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6월 서울세관 으뜸이' 직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 6개월 넘는 치밀한 추적…불법 환치기 현장 덮쳤다 = 이번에 손 반장의 주도하에 적발해 낸 1조4000억원 규모의 불법외환거래는 무역업체와 환전상, 환치기업자 등이 얽히고 설킨 대형 불법 거래였다.
시작은 관세청의 외환모니터링을 통해 불법 내용이 포착되면서부터.
관세청 본청 지시로 내사가 진행되면서 손 반장은 정보를 수집하는 업무를 맡았다 국정원 등과 업무 공조로 관련 정보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일본에서 국내로 반입되는 불법자금을 환전하는 업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쾌거를 올렸다.
"입수정보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한 후, 혐의자들의 사업장에 대한 동시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해 혐의 사실에 대한 증거자료를 확보해 입건할 수 있었습니다."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 분석이 불법 환치기 거래가 이뤄지는 현장을 적발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수사과정에서 흔치않은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2006년부터 외화조사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수사과정에서 범행실행 중에 있던 수 십억원 상당의 돈뭉치(엔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압수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띠지로 100장씩 묶인 1만엔권 다발이 여행용 트렁크와 백팩에 나란히 담겨져 있는 것을 보고 어마어마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 똑부러지는 외환조사 7년차…여성 특유 '섬세함' 강점 = 손 반장이 외환조사업무를 맡은 것은 지난 2006년부터. 올해로 7년차다. 세무대학을 졸업한 뒤 특채로 관세청에 입사한 이후 수출, 회계, 통관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해왔지만 외환 조사 업무를 가장 오래 했다.
그러다 보니 말투까지 바꿨다고.
"외환조사 업무로 작은 것 하나도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다보니 무엇이든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지게 됩니다. 주로 조사를 하면서 피의자들을 상대로 대화하는 일이 많다보니 남들이 들으면 피의자 대하듯이 따지는 듯한 말투가 생긴 것 같아요."
실제 손 반장이 상대해야하는 대상은 피의자들이 대다수. 여기에 수시로 반복되는 주말근무나 야근은 다반사다. 아무리 알파걸이라고 해도 여성에게는 다소 벅차진 않을까.
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외환조사가 숫자를 다뤄야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꼼꼼함이 필수입니다. 외환조사라는 업무가 숫자를 많이 다루다보니까 아무래도 여성들의 섬세함이 세밀하게 정보 분석을 하는 데는 오히려 장점이 되는 셈이죠."
이렇게 똑 부러지게 일을 마무리하는 손 반장이지만 관세청 근무 10년을 훌쩍 넘기면서 가장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은 사람 사이의 '정(情)'이다.
"한번은 무등록외국환업무로 호주가 거주지인 여성 피의자를 조사하게 됐어요. 피의자가 여성인데다 생활근거지가 호주다 보니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게 무섭다고 해 밤새 조사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밤새 피의자를 조사하고서 석방 조치했는데 안타깝게도 피의자가 사기 혐의로 지명수배 돼 있는 상태라 경찰에 피의자를 넘기게 됐어요."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함께 밤을 보내다보니, 아무리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피의자를 경찰에 넘겨야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다행히 나중에 피의자가 경찰 조사를 받은 후에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이 됐지만 그럴 때면 사람에 대한 정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고 했다.
"조사자와 피조사자 관계로 피의자들을 만나지만 이상하게 묘한 연대감이 형성됩니다. 그러다 보니 죄는 밉지만 사람에 대한 '정'으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있어요."
□ 조사업무 어엿한 '베테랑'…"존경받을 수 있는 공직생활 하고 싶다" = 손 행정관은 세무대학교를 졸업한 뒤 관세청에 입사했고 이후 서울시립대에 편입해 내국세를 공부했다.
"입사 초기에 관세청에서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한다고 하니 담당 과장님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직장생활과 학업 두 가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당시 담당 업무도 지원 부서라서 조금이나마 틈을 내 공부를 할 수 있었죠."
이렇게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얻은 실력은 이제는 외환조사 업무 베테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업그레이드 됐다. 손 반장은 앞으로는 관세청 고유 업무 영역인 심사 업무를 담당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멀게는 무엇보다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관세청 업무를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 희망이다.
"얼마 전 38년 공직생활 후 명예퇴직 한 선배의 화기애애한 퇴임식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퇴임식이 끝난 후 다과회 중에 과장님의 자녀분과 사모님이 나오셔서 존경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남편으로서 사랑과 감사를 표시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저도 저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존경받고 사랑 받을 수 있고,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공직생활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약력]
▲1978년 ▲세무대학교, 서울시립대 ▲8급특채, 관세주사보(현)
▲1999년 관세청 입사, 서울세관 통관과·세관운영과, 인천공항세관 휴대품통관국, 서울세관 외환조사과(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