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정치권이 거센 증세(增稅) 폭풍을 몰아오고 있다. 좀처럼 잦아들 기세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말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부자 증세' 입법안이 소득세를 중심으로 논의된 데 이어, 올해 대선을 앞두고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융 자산가들의 이자, 주식배당 등 자본소득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기업들에 대한 세부담(법인세) 증가를 위한 움직임까지 엿보이고 있다. 특히 대선 화두인 경제민주화가 '재벌규제'를 모토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대기업들에 대한 증세 방안 추진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 고액 금융자산가 증세, 사실상 '확정' = 지난 30일 새누리당은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당정 협의를 갖고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현행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추는 방안에 합의하고, 올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이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주주 주식양도차익 과세범위 확대(지분 2%, 시가총액 70억원) 및 파생상품거래세(세율 0.01%) 도입 방안에도 전격 합의했다.
합의안들이 실제 제도화로 이어질 경우, 연간 조 단위를 훌쩍 뛰어넘는 추가세수가 확충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표심(票心)'을 노린 여권과 과세베이스를 확대하려는 정부의 정책의지가 어우러져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 증세 방안이 도출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정은 내달 1일 추가협의를 열어 올해 주요 세법개정안에 대한 최종합의안을 도출할 예정. 이날 협의에서 또 다른 증세방안이 논의될지 여부에 대해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증세 타깃, 대기업 법인세까지 확대되나? = 주목할 부분은 증세 타깃이 고액 금융자산가를 넘어 대기업 법인세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각종 증세 입법안을 제시했던 정치권은 대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법인세 인상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과거 법인세 인상안이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주로 야권을 중심으로 발의된 것과 달리, 당초 기업 친화적이었던 새누리당도 정책 방향을 틀어 사실상 법인세 인상에 준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올해 대선에서 경제 분야 핵심 의제로 부각된 이른바 '경제민주화' 논의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상황. 최근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前 임시투자세액공제), R&D 세액공제 등 한 해 수 조원에 달하는 거대 비과세 감면제도 혜택이 일부 대기업들에게 몰리고 있다는 지적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현재 정치권은 법인세 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차이는 보이고 있으나, 모두 법인세 '증세'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성은 같다.
첫 증세카드는 야권이 먼저 꺼내들었다. 지난 6월 통합진보당 박원석 의원은 과표 1000억원 초과 구간 기업에 30%의 법인세율(현행 22%)을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통합당도 이 달 초 경제민주화 9대 입법안을 제시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증세카드를 꺼내들었다. 홍종학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인세법 개정안은 대기업 계열사 간 수입배당금액에 대해 기존 익금불산입 적용을 배제시켜 법인세를 과세하고, 계열사 간 출자를 위해 차입한 자금에 대한 이자도 손금산입을 불허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인세율 자체를 높이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비과세 영역을 과세로 전환함과 동시에 법인세 과표를 좌우하는 손금산입 부분을 줄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과표 수준을 끌어올려 개별기업에 적용되는 실질적인 법인세율을 높이는 효과가 예상된다.
여권도 법인세 증세 정책에 한 발짝 발을 들여놓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인 나성린 의원은 과표 1000억원 초과 고소득 법인에 대한 최저한세율을 기존 14%에서 15%로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구체적으로 과표 1000억원 초과 부분은 기존 14%에서 15%로, 과표 200억원∼1000억원은 11%에서 12%로 각각 1%p씩 최저한세율을 상향조정하되, 과표 100∼200억원 사이 중소기업은 경기여건을 고려해 최저한세율을 기존 11%에서 10%로 1%p 낮추도록 규정했다.
최저한세율이란 한해 개인사업자 또는 기업들이 내야하는 최소한의 법인세 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부분을 올리겠다는 의미는 사실상 법인세 증세효과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는 나 의원의 개정안 현실화 될 경우 향후 5년간 약 8000억원 상당의 법인세수가 추가로 확보될 것으로 분석했다.
□ 법인세 증세 반대하는 재정부, 올해 세법심의 결과는? = 정부와 정치권은 고액자산가의 세 부담을 높이는 정책에 대해선 어느 정도 합의를 본 상황이지만, 대기업 법인세 문제에 있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대기업의 세부담을 어느 정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외국인 투자유치 등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부분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주로 법인세 감세를 주장해 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말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공식 브리핑 자리에서도 "추가적인 법인세 증세는 없다"며 정치권에서 불거지고 있는 법인세 인상 논의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 내부적으로도 사실상 지난해 국회 세법개정안 심의과정에서도 일정 부분 법인세 증세 방안을 수용한 만큼, 추가적인 증세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법인세율 자체를 지금보다 높이는 세법 개정은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최저한세율 문제와 민주당의 손금산입 문제의 경우 정부가 우려하는 외형적인 법인세율 인상이 아니고, 대선 이슈로 부각된 경제민주화 논의의 연장선상이라는 측면에서 정치권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양 입법안 모두 당론 차원에서 발의됐다는 점은 방어논리를 펼쳐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큰 부담감으로 작용될 소지가 높다. 이에 따라 올해 정기국회 세법 심의 과정에서 법인세 분야와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이 어떤 방향으로 합의안를 도출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