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도래 103개 중 24개 폐지, 5개 신설
기회만 생기면, 비과세·감면을 줄여 재원을 확충하겠다던 정부의 호언장담은 결국 '허언(虛言)'이 됐다.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부분을 최대한 감축하려는 노력의 흔적은 엿보이지만, 딱 거기까지.
최근 어려운 경제여건에 따른 서민생활 지원을 위해 정부 스스로 대다수 세금감면 제도의 일몰을 연장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다만 그동안 지속되어 온 비과세·감면제도 증가세를 꺾어, 비과세·감면제도의 숫자를 줄이기로 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
□ R&D 세액공제 등 대규모 감면제도 유지 =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세법에 규정된 전체 비과세·감면제도 수는 총 201개. 이 가운데 103개의 제도가 올해 말, 일몰을 맞아 종료될 예정이다.
재정부는 세법개정을 통해 장기주택마련저축(이하 장마저축) 비과세, 외국국인 유흥주점 개별소비세 면제, 신용정보회사 채권추심용역 부가세 면제, 여수세계박람회 사용물품 부가세 면제 등 총 24개 감면제도를 일몰종료 시키기로 했다.
다만 장기펀드 소득공제, 한부모 소득공제, 비과세 재형저축, 특성화고 졸업자 전역 후 세제지원, 비거주자 외화예금에 대한 이자소득세 면제 등 5개 세금감면 제도를 신설한다는 방침.
외형적으로 줄어든 비과세·감면 제도의 숫자는 19개. 하지만 이에 따른 세수증대 폭은 미미한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실제로 이번에 폐지가 확정된 감면제도 중 가장 덩어리가 큰 부분은 장마저축 비과세 부분.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장마저축 비과세제도의 작년 조세지원 실적은 1206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장마저축이 중산·서민들이 주로 활용하는 금융상품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이를 순순히 허락할지 여부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자칫 정부의 뜻이 정치바람에 꺾일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장마저축을 통한 조세지원 실적은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대표적인 거대 비과세 감면제도인 R&D 세액공제(2조5994억원), 자경농지·축사용지 양도소득세 감면(1조4472억원), 농·수협 등 조합 법인세 과세특례(3594억원) 등과 비교해 상당히 작은 부분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런 부분을 감안한 듯, 올해 세법개정 결과물을 '미세 조정'으로 규정했다. 당초 계획된 수준보다 정비 폭이 크지 않다는 점을 일정 부분 시인한 셈이다.
다만 정부는 감면제도의 완전한 폐지 대신 지원대상과 세율 등을 조정하는 '우회방법'을 선택해서 세금감면 폭을 줄였다. 대표적인 것이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기본공제율을 1%p 줄여 약 2800억원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한 부분이다.
특정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특혜로 논란이 됐던 R&D 세액공제 제도는 중견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율(8%) 부분을 신설하고, 공제대상 투자금액 기준을 현실화(직전연도 투자금액 기준)하는 수준에서 매듭지었다. 이에 따른 구체적인 세수확충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반면 정부는 대중교통비 신용카드 소득공제 확대(900억원), 근로장려금 적용대상 1인 노인가구·탈기초수급자 확대(900억원), 재형저축·장기펀드 세제지원(2000억원) 등 새로운 감면제도를 만들거나 기존제도를 바꿔 5년 동안 9100억원 규모의 세금이 감면되도록 세법을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결론적으로 비과세·감면을 통한 상당액의 재원을 확충하겠다던 계획은 당초 기대와 달리 매우 약한수준에서 끝났다. 재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비과세 감면제도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난 부분을 고려할 때, 올해 처음으로 감면제도 숫자가 줄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 비과세·감면 규모 연평균 30조, 전 정권의 1.5배 = 비과세·감면 규모의 증가세를 놓고 전 정권과 현 정권을 비교하면, 이명박 정부가 뚜렷한 감세기조를 나타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2008년∼2012년 사이 각종 비과세·감면제도에 따른 국세감면액은 총 152조4510억원으로 연평균 30조원 이상.
이는 전임 노무현 정부 5년 간 국세감면액(99조8574억원)보다도 50조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쉽게 말해 정권이 바뀌면서 비과세 감면금액이 50% 이상 늘어났다는 얘기다. 이는 이 기간 국세증가율을 수준을 뛰어넘는 수치다. 전 정권보다 확실한 감세정책을 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이는 그동안 유지됐던 비과세 감면제도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수에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을 주요 세목에 감세정책이 가미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부분에 대한 첨예한 정치적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체로 이러한 감세기조를 기반으로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극복해 냈다는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는 반면, 야권은 '부자감세'로 지목하면서 공세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정치상황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의 여건을 고려해 소폭 증세기조로 선회했지만, 올해 정기국회 심의과정은 녹록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정은 대체로 정부안에 합의를 한 상황이지만, 야당은 소득세(과표 1억5000만원 초과 38% 세율적용), 법인세(과표 500억원 초과 25% 세율) 인상안을 비롯해 고소득자, 대기업에 대한 감면혜택도 더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6일 민주당 당론 차원의 세제개편안 발표에서 "정부의 세수증대 효과도 5년간 1조6600억원에 불과하고, 비과세·감면제도도 70개 이상 늘었을 뿐만 아니라 투기성 단기주택양도에 대한 세부담도 완화돼 재정건전성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조세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이 '힘겨루기'가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