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마련한 2012년 세법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한 제45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가 8일 오후 1시30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진행됐다. (사진=김용진 기자)
장밋빛으로 가득한 대한민국 경제는 결국 없었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대한민국 경제는 소위 잘 나갈 줄 알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에 대한 자신감은 수 십조원 규모의 '감세정책'으로 표출됐다.
하지만 임기 말이 도래한 2012년 현재, 대한민국 경제는 흔들리고 있다. 각종 대내외 악재가 중첩된 결과인 측면도 있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는 여전히 침체되고 국가재정은 위기일로에 놓여 있는 것이 대한민국 경제의 현 주소다.
이 와중에도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열매'를 풍성하게 따먹은 재벌 대기업들은 몸집을 크게 불렸고 중산·서민층은 '가계부채 1000조 시대'가 말해 주듯,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 정치권은 12월 대선의 테마로, 재벌규제를 상징화 한 '경제민주화'를 선택했다.
기획재정부가 8일 발표한 2012년 세법개정안은 대한민국 경제의 현 주소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재정부는 반박하지만, 지난 2010년과 지난해에 이어 'MB노믹스'의 핵심이었던 감세정책과는 확실히 작별을 고한 모습이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이 "전반적인 감세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감세 기조의 전면적인 수정이 아니라 우리 소득과세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공평과세를 정립하기 위한 미세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박 장관의 설명은 '허울'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 '돈맥' 찾는 정부, 고소득자·대기업 '정조준' = 재정부에 따르면 이번 세법개정안이 예정대로 작동할 경우, 발생하는 세수효과는 향후 5년간 1조6600억원 수준. 대규모 감세정책 방안이 담겨있었던 2008년과 2009년을 제외하면 이후 2010년, 2011년 정부가 마련한 세법개정안은 '증세' 위주로 짜여져 왔다.
특히 정부 스스로 고소득자와 대기업 대한 증세정책을 선택한 부분이 눈에 띈다. 지난 십 수년 동안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는데도 불구, 꿈쩍도 하지 않았던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에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 인하,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 확대를 담아냈다.
당장의 세수증가 효과가 크지 않더라도 고소득자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이 두 부분에 대한 정부가 기존의 입장을 버리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 자체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이 부분에 대한 조정이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신호탄' 격이나 다름없기 때문.
비록 시행시기를 3년 유예하는 조건이 붙었지만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과세방안도 제시했다.
대기업 최저한세율 인하도 법인세 명목세율 인하에 비해 실질적인 증세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은 선택으로 풀이된다. 당장 세수증가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향후 경제상황이 호전되면 추후에라도 세수증가는 수반되기 때문이다.
□ 중산·서민층 '감세(?)'…"실질은 증세일 수 있다" = 지난 수 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권은 정치용어로 등재해도 될 정도로 '부자증세'를 둘러싼 정치공방을 계속해 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소득세율 인하 조치가 감행,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아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 인하,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 강화 등은 순수한 의미에서 분명한 '부자증세'다. 일반 근로자 가구가 연간 3000만원 이상씩의 이자 또는 배당소득을 얻거나 주식을 팔아 '떼돈'을 벌어들이는 일은 만무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통해 중산·서민층에 대해서는 감세기조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과세 재형저축, 장기펀드 소득공제, 한부모 소득공제 신설, 교육비 소득공제 확대, 대중교통비 신용카드 소득공제 확대 등이 이에 대한 '증거물'.
하지만 그 반대선상에 배치된 제도개선안을 살펴보면, 온전한 의미의 감세로 볼 구석은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중산·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장기주택마련저축 소득공제 및 비과세를 폐지하고, 농·수협 예탁금 비과세 체계를 종료하고 저율과세로 돌리고 특히 신용카드 소득공제 공제율을 하향 조정한 부분은 신설 또는 확대되는 중산·서민층 세제지원 정책의 감세효과를 상쇄시킬 가능성이 높다.
최근 경제침체와 가계부채 문제로 현금 운용력이 현저히 떨어진 중산·서민층들이 신용카드 사용을 늘리고 있다는 통계는 정부의 감세영향력이 상당한 신용카드 소득공제 공제율 인하 정책이 '엇박자' 정책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대목일 수도 있다.
연간 200만원(대중교통비+전통시장 사용분)의 추가적인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부지런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전통시장에 가서 영세상인들에게 카드결제를 요구하는 일반 국민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은 한 번쯤 새겨들었어야 할 부분이다.
□ 소득세 과표조정·종교인 과세 '생략'…"아쉬운 부분도 남았다" = 당초 이번 세법개정안에 포함될 것으로 보였던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 및 종교인 과세 부분이 빠진 것은 전체적인 그림의 완성도를 떨어뜨린 대목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재정부는 이 두 부분을 세법개정안에서 제외한,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통해 이유가 무엇이 됐든 이 부분들에 대한 확실한 '개선의지'를 담아냈어야 하는데도, 끝내 이를 표현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비과세·감면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고 큰 소리를 떵떵 치던 모습도 이번 세법개정안에서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큰 정치일정을 앞둔 정기국회에서 비과세·감면의 대폭 정비가 가능하겠냐는 실효성에 의문이 많이 제기됐다"며 "몇 년 뒤의 조세제도까지 이번 정부가 안을 내놓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세법개정안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감한 조치들을 대놓고 밀어붙인 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정부가 당초 입장들을 접은 이유는 결국 '정치'다.
그게 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