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 연기…대권 노린 '신(神)의 한 수?'

시행령만 개정하면 종교인 과세 가능

정부가 '공정사회, 공평과세' 실현의 일환으로 제도 시행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종교인 과세 방안을 정작 올해 세법개정안에 포함시키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8일 '2012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고, 종교인 과세 방안을 이번 세법개정안에 담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회 의결이 필요한 세법개정 없이 정부가 대통령령(시행령) 개정만으로 종교인 과세를 즉시 시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말까지 시행령 개정 여부를 미루겠다는 입장이다.

오랜 시간 관행적으로 비과세된 종교인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과세 기술상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연초부터 종교인 과세 방안을 줄기차게 추진해온 정부가 갑작스레 연말 이후로 결정을 미루자, 대선을 앞두고 종교인들의 '표심(票心)'을 고려해 시행시기를 일부러 늦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말 바꾸는 정부, 종교인 과세 '갈팡질팡'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월 "종교인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것은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관점에서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사회적 공감대를 빨리 이루고 예외 없이 소득에 대해 과세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과세돼야 하고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느슨하게 과세되거나 과세가 거의 안됐던 측면을 감안해야 한다"며 "지금 검토 중이고, 어떻게든 자꾸 미뤄놓고 있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6년 국세청에서 기획재정부에 종교인 과세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한 이후 6년째 미뤄왔던 문제를 과세당국 수장이 직접 거론하며, 올해 세법개정안에 포함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박 장관은 세법개정안 발표시 종교인 과세를 위해 상당한 적응과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며 5개월만에 말을 바꿨다.

그는 지난 8일 열린 2012년 세법개정안 브리핑에서 "종교인 등을 불문하고 소득이 있는 곳에 납세의무가 따른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바로잡기 위해서는 상당한 적응과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며 "종교계와 좀 더 협의해 시간을 두고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과세되지 않았던 종교인 소득을 전면 과세할 경우 세무행정상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고, 최근 자진납세 결의를 하고 있는 종교계와도 추가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유권자 절반이 종교신자, "표가 얼만데..." = 종교인 소득을 과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과세 기술상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점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연말 대선을 앞두고 종교계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역력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한국의 종교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53.08%가 종교를 갖고 있다. 종교별 신자 비율은 불교 43%, 기독교 34.5%, 천주교 20.6% 등의 순으로 많았다.

특히 과세 전환시 소득세를 직접 납부해야하는 종교인(교직자) 수도 개신교 14만483명, 불교 4만6905명, 천주교 1만5918명 등으로 20만명을 훌쩍 넘는다.

인구 절반이 종교신자인 상황에서 연말 대선을 코앞에 두고 섣불리 종교인 과세를 추진할 경우 상당 수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을 잃게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세법개정안 발표 전에 새누리당과 재정부가 실시한 당·정 협의에서 종교인 과세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되지 않았고,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은 "큰 정치일정을 앞둔 정기국회에서 비과세·감면의 대폭 정비가 가능하겠냐는 실효성에 많은 의문이 제기됐다"며 "단계적으로 비과세·감면을 정비하는 방안을 강구했지만, 이번 정부에서 몇 년 뒤의 세제까지 안을 내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 시행령만 개정하면 'O.K'…"연말에는 결정될까?" = 정부가 종교인 과세 시행을 또 다시 연기하기로 결정하자 조세전문가들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세법의 기본원칙에 따라 종교인들도 벌어들인 수입에 대해 일반 국민들과 똑같이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세법에서 종교인 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적용한다는 규정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득세법에 따른 비과세 근로소득은 복무 중인 군인(병)이 받는 급여, 요양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등으로 한정된다.

이에 따라 종교인 과세 방안은 세법에 따로 규정할 필요가 없으며, 종교인 비과세 관행만 바로 잡아 세금을 과세하면 그만이라는 설명이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인천대학교 교수)은 "소득세법상 비과세 소득에 종교인 소득이 열거돼 있지 않다"며 "세법에는 종교인들도 과세를 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현재 국세행정 차원에서 종교인들에 대해 과세하지 않고 있어 공평과세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금을 부과·징수하는 과세당국에 따르면 현행 세법 규정상 종교인 급여가 근로소득에 포함되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으므로, 시행령을 통해 종교인 소득을 근로소득 범위에 명확히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실제로 재정부는 종교인 과세 시행 방안으로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시행령에 '종교 종사자가 받는 소득은 근로소득에 포함된다'는 규정을 명시, 종교인 급여 등의 근로소득 포함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방침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종교인 과세 방안으로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며 "종교인들이 받는 소득도 근로소득에 당연히 포함된다는 문구를 시행령에 담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다"고 밝혔다.

백운찬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종교인 과세는 기본적으로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하다"며 "종교계 자체가 자정해 납세결의를 하고 있으므로 연말까지 협의를 진전시켜 반영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