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카드' DTI 완화…시장은 '걱정' 반 '기대' 반

정부 "주택거래 실수요자 특성 맞춘 보완"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할까, 가계 빚을 줄여야 할까."

이 두 가지 문제를 두고 정부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지난 17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했다.

DTI는 소득수준에 따라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제도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하나의 장치였던 반면에, 부동산 침체가 계속되고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면서 규제완화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이번 DTI 완화책을 살펴보면 20~30대 젊은 층과 고액자산가 위주로 대출한도를 늘리는 것이 주된 내용.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부동산 업계는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데 실제로 효과가 적을 것으로 보는 반면, 금융권은 가계부채의 건전성 문제를 키울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주택거래와 관련해 실수요자들이 불합리하게 느끼는 DTI 제도상의 미비점을 보완한 것이 이번 대책의 취지라는 입장이다.

조세일보는 각계의 전문가 의견을 담아 이번 대책의 효과와 전망을 진단하고자, 'DTI 규제 보완 방안'을 주제로 '머니&토크'를 진행했다.

이번 토론에는 김태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팀장(부동산학 박사), 임병철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투자전략분석),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김리영·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도시·지역 계획 박사),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여했다.

■ DTI 완화책, '왜' 필요한가 = 우리나라 중산층의 상당수 자산은 주택이나 부동산으로 이뤄져 있다. 또 빚을 내 집을 산 뒤 이자 상환 부담이 늘고 있는 가구들, 즉 '하우스 푸어'들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이들 중산층과 하우스 푸어의 가계부채 문제가 커졌다. 이는 결국 금융권의 부실뿐만 아니라 민간소비 등 경기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시장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태현 과장 : DTI 제도의 취지는 소득을 통해서 빚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자리가 있는 젊은 층에 기대할 수 있는 장래소득이나, 은퇴자가 보유한 부동산관련 처분이익은 그동안 상환능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따라서 DTI의 기본 원칙을 유지하되, 실현성 있는 소득 중 일부를 인정하도록 실수요자 관점에서 제도를 보완했다.

박원갑 팀장 : DTI 완화는 매우 제한적이어야 한다. DTI를 완화하면 당장은 주택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나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 DTI 문제는 부동산의 시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경제전반의 역학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 '일부' 계층에만 대출 확대…부동산 살리는 '묘책' 될까 = 이번 DTI 대책이 나온 뒤 시장이 가장 우려한 것은 '실효성' 문제다.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실제로 빚을 내 집을 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그 가능성에 물음표가 던져진다. 

임병철 팀장 : 이번 DTI 대책은 가계부채 부담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DTI 완화는 양날의 칼과 같아, 주택거래 활성화를 위해서 필요하지만, 가계부채 부담이 늘고 금융권 부실이 커질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정부가 최대한 감안해 정책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팀장 : DTI 완화가 부동산 회복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피부에 와 닿을 정도는 아닐 것. 부동산이 침체된 것은 DTI 규제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시장자체가 공황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재정위기의 불확실성을 비롯해 정부가 값싼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늘리는데 따른 기대감,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증가에 따른 주택거래의 수요감소 등 여러 변수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종시 건설로 수도권의 주택 수요가 지방으로 이전되고 있어 부동산 시장에 악재가 되고 있다.

이준협 연구위원 : 현재 가계 빚을 진 채무자는 저소득층이나 자영업 종사자, 부동산 과다보유 등의 형태로 나뉜다. 그런데 이번 제도 개선 내용을 보면 부동산 과다보유 채무자가 더 많은 부동산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가계부채 건전성이 우려되며 바람직하지 않다.

김리영 책임연구원 : DTI 규제와 관계없이 국내외 경제여건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의 구매여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침체된 부동산이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 가계부채 '적신호' 우려…근본적인 해결책은? = 다음 달부터 정부는 새로운 DTI 기준을 은행권에 우선 적용한 뒤 추후 제2금융권 적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또 가계대출 동향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1년 동안 효과를 점검해, 지속 시행을 재검토할 방침이다.

정부가 이처럼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은, DTI 완화가 자칫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이와 관련 시장에서는 20~30대 젊은 층의 부실 우려를 더 하고 있다.

김태현 과장 : 이번 규제 보완 방안에 따라 젊은 층의 대출한도가 증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용도나 만기 10년 이상의 비(非)거치식 분할상환 등 여러 제한 조건을 부가했고, 은행들이 상환능력을 제대로 파악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금융 감독 당국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또한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정책기조를 일관성 있게 유지해 나갈 것이다.

박원갑 팀장 : 고액자산가의 상환능력은 충분한 만큼 이들의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젊은 층의 미래소득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담보하는 것은 어렵다. 부동산 투자심리를 되살리려면 DTI 완화보다 양도세나 취득세의 감면혜택을 연장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다주택자의 중(重)과세도 폐지돼야 한다고 본다.

이창선 연구위원 : 부동산이 하락하면 가계대출의 부실위험이 더 커진다. 미국에서는 '리스백'(매각 차용) 제도가 운영되는데, 부동산 소유자가 이를 매각한 뒤 새 주인에 임차료를 내고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담보가치가 하락한 주택을 은행이 사들였다가 다시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 부동산 하락의 연착륙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지은 책임연구원 : 부동산 취득세가 4%에서 2%로 내렸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의견들이 많다. 취득세를 더 인하해야 부동산 거래를 늘릴 수 있고, 이러한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