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빅3' 경제사령탑들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최대 화두인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정책경쟁에 가속도가 붙었다.
박근혜-김종인, 문재인-이용섭, 안철수-장하성 구도로 짜여 진 빅3 진영의 공통분모는 경제민주화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우선순위와 재벌개혁, 그 해법들을 놓고 각론에서 견해가 엇갈리고 온도차도 크게 느껴진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는 김종인 전 청와대경제수석을 영입해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중책을 맡김으로써 야권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경제민주화 이슈 선점에 일단 성공했다.
경제민주화를 먼저 제시했다가 새누리당에 이슈를 선점당한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당론 법안발의로 공세의 시동을 세게 걸었다. 경제민주화 관련 당내 핵심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용섭 당 정책위의장은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진정성도, 알맹이도 없고 실현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각을 세우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정책 컨트롤타워로 영입했다. 장 교수는 그동안 기업 지배구조개선을 강하게 주장하고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하는 등 재벌개혁에 적극적이어서 여권에 빼앗긴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도하기 위한 정책발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대책 발표를 이끌어온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은 재벌들의 경제력 남용 방지에 관한 '시즌1'을 끝내고 노동, 사회, 문화 등의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경제민주화 시즌2'를 시작했다. '비정규직 문제해결'이라는 빅 이슈를 제기하며 노동사회 분야의 경제민주화 의제도 선점을 노리고 있다.
경실모는 지난 7월 이후 3개월여에 걸친 '시즌1'에서 경제사범 처벌강화, 일감몰아주기 및 순환출자 금지, 배임·횡령 시 대주주 박탈 등 경제민주화 1~4호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들 4개 법안의 당론 채택을 위한 의원총회를 이한구 원내대표가 두 차례나 거부하며 10월 이후로 의총을 미루기로 해 논란을 빚고 있다.
재벌의 지배소유구조는 건드리지 않고 경제력 남용과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를 철저히 근절해 재벌개혁을 이끌어야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스스로 경제민주화 1순위 과제로 재벌 개혁 아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균형과 양극화를 꼽고 있다. 재벌을 '탐욕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순환출자, 출자총액제, 금산분리 등 재벌지배구조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다.
박근혜후보는 경제민주화가 경제를 망가뜨리거나 기업경쟁력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고 대기업 순환출자의 경우 기존 순환출자를 금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박후보 의중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반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경제민주화의 출발은 재벌개혁이 그 시작"이라며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재벌의 경쟁력을 살리면서 개혁방안을 찾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용섭 의장은 "재벌 개혁 없는 경제민주화는 허구"이며 "출총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가 재벌개혁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동반성장, 상생, 균형발전이 경제민주화의 3대 키워드다.
10대 대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이 다른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순자산의 30% 한도로 제한하고, 순환출자를 3년 내 해소하고, 금산분리 강화를 위해선 산업자본의 의결권 있는 주식취득한도를 9%에서 4%로 낮추는 금산분리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경제민주화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해놓고 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모델을 주창한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시스템, 계층 간 이동이 차단된 사회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 지식산업시대에 역행하는 옛날 방식의 의사결정구조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현실진단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 동력과 결합하는 경제혁신을 이룰 때만이 실현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혁신을 않으면 더 이상 성장이 어렵고, 혁신을 하려면 지금의 기득권을 깨는 개혁이 전제되어야한다. 경제민주화는 혁신을 위한 개혁의 한 과정에 해당된다.
개혁과 혁신을 해내는데 도움이 된다면 보수든 진보든 가릴 것이 없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영입도 그의 경륜과 경험이 안 후보의 '혁신경제' 실천에 지혜와 힘을 줄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재벌개혁이 대기업의 글로벌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투자위축으로 일자리를 잃게 만든다는 재계의 우려에 대해 장하성 교수는 "재벌의 계열사확장 등이 경영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대한민국 경제를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재벌이 해체의 대상은 아니며, '정의로운 시장경제'와 '포용적 성장'을 위한 개선과 개혁의 대상일 뿐임을 강조한다. '재벌해체가 아니라 재벌의 경쟁력을 살리면서 개혁방안을 찾자'는 문 후보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안후보측이 경제민주화보다 혁신을 앞세운 데 대해 '사나운 개가 동네 병아리를 물어 죽인다면 병아리들 혁신에 앞서 사나운 개를 먼저 묶어 두어야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부터 먼저 해야 혁신도 성장도 복지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안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혁신과 성장을 자전거의 두 바퀴에 비유하며 혁신경제의 정책비전과 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선거과정에서 내놓겠다고 다짐했다.
새누리당 박후보측은 재계와 보수진영을 의식한 듯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고 있다. 박후보는 2007년 경선당시 '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를 세운다'는 '줄푸세' 공약이 "지금의 경제민주화와 같다"고 언급해 경제민주화의 진정성을 일부 의심받고 있다. 그 '줄푸세'가 부자감세와 대기업 규제완화, '법치'를 앞세운 파업통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후보 진영 마다 다투어 경제민주화 포럼과 실천모임을 만들고 다양한 논의를 거쳐 법안까지 발의해 놓고는 있지만 그 통과여부는 안개속이다. 대통령도 새누리당 소속이고, 국회도 새누리당이 다수인데 경제민주화를 왜 지금 하지 못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없지는 않다.
'3인3색'의 경제민주화는 결국 누가 진심을 담아서 실행할 수 있느냐, 또 그 실행과정에서 부닥치는 많은 이해관계의 벽을 누가 소통과 공감으로 잘 뛰어넘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너도 나도 부르짖는 경제민주화가 실체와 진정성을 결여한 채 표를 얻기 위한 한 때의 '정치마케팅'에 그친다면 이야말로 '정체불명의 포퓰리즘'이 아니고 무엇이랴.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