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경제민주화 관련 인사를 영입하는 등 경제민주화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시대적 화두로 경제민주화가 제시된 지금,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해야만 대선 정국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대선후보들이 내세운 카드가 바로 '사람'이다. 경제민주화를 대표할 수 있는 얼굴을 전면에 내세워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다는 국민의 기대감을 높이자는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일찌감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영입해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밝혀왔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진보적 성향의 장하성 교수를 영입, 이슈를 만들어왔다.
세 후보 중 가장 늦게 경제민주화 관련 인사를 영입한 문 후보는 개혁적이라고 정평이 난 참여정부 인사 이정우 교수를 영입하고, 경제 정책 자문그룹으로 중도 혹은 보수 색깔을 띈 인사들을 구성했다.
진보개혁적인 색깔을 중도 혹은 보수로 희석시켜 중간지점을 찾는 '이중플레이' 방식을 택한 것이다.
□ 경제민주화 얼굴은 '개혁' = 당내 친노와 비노 갈등 구조 속에 문 후보가 택한 것은 선대위 전면에 '비노'를 내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노인 노영민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고 김부겸 전 의원과 이낙연, 이인영 의원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선대위 미래캠프 내 있는 경제민주화위원회의 수장으로는 친노인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앉혔다. 개혁적이란 것이 그 이유였다.
대구 출신인 이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후 인수위에 합류하면서 청와대에 입성, 참여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을 맡았다.
이어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지내며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만큼 친노 색깔이 짙다.
문 후보와도 이 때 인연을 맺었다.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문 후보와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다.
이후 이 교수는 2005년 7월 원래 직업이었던 대학교수로 복귀했으며, 지난 5월에는 문 후보의 싱크탱크인 담쟁이 포럼에서 활동해왔다.
이력으로만 보면 친노 쪽 성향이 강하다. 정책 성향으로 따진다면 이 교수는 진보 쪽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며 재벌개혁 의지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10·29 부동산 종합대책이 바로 이 교수가 만든 작품이다. 이 대책은 2005년 시행된 종합부동산세 중과의 시초였다.
이 대책에는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를 최고 82.5% 이상 중과키로 하고 분양권 전매를 전면 금지하는 등의 고강도 대책이 포함됐다.
개혁적인 성향이 강해서인지 자신이 몸담아 일했던 참여정부와도 날을 세우기도 했다. 한·미 FTA 체결에 대해선 "이로 인해 참여정부의 철학이 애매해졌다"고 비판했다.
참여정부의 개혁실패에 대해선 "재벌과 관료의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교수가 참여정부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청와대에 머물지 못한 것도 이런 성향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교수 자신이 원하는 개혁을 참여정부의 관료들이 막아서자 충돌을 야기했고 이에 실망해 뛰쳐나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사태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이 교수와 달리 문 후보는 외곽지역의 경제 정책 자문그룹으로 관료 출신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 교수와는 정반대의 성향인 사람들로 자문그룹을 구성한 것이다.
□ 중도표심 노린 '관료' 자문그룹 = 문 후보가 이 교수를 영입하기에 앞서 구성한 것이 바로 관료 중심의 경제정책 자문그룹이다.
22명의 경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그룹의 대표적인 인사는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다.
박 전 총재는 네 번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경제수석비서관에서 한은 총재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한은 총재를 역임할 당시에는 거침없는 화법으로 불협화음이 잦았지만 소신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런 박 전 총재가 문 후보의 면전에서 민주당이 당론으로 반대했던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를 찬성하라고 주문한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 교수와는 정반대의 발언이다.
이 같은 박 전 총재의 발언은 중도층을 끌어들이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문 후보의 지지층은 안 후보와 대부분이 겹친다.
안 후보를 지지하는 층은 중도층으로 좌나 우로 쏠려있는 것을 싫어한다. 합리적인 중도를 지향하고 있다. 문 후보의 이미지도 세련되고 합리적인 이미지에 가깝다.
하지만 민주당은 문 후보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슈퍼부자 증세나 1%와 99%의 대결구도, 재벌개혁 정책 등을 과격하다고 보는 경우가 상당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문 후보와 민주당 사이에 괴리감이 발생하고 있고 이에 대한 간극을 메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안 후보는 비교적 안정된 색깔로 경제정책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안 후보는 구체적인 경제정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경제민주화에 원론적으로는 찬성하면서 경제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후보가 선택한 것이 경제민주화위원회의 수장은 진보를, 자문그룹에는 중도 혹은 보수 인물을 내세운 것이다. 정반대 성향의 인물을 당내외에 배치해 균형점을 꾀하려 한 것이다.
실제 자문그룹 22명 중 17명이 정부 부처 장·차관이나 공기업 사장, 국책 연구기관을 거친 관료 출신으로 이들이 문 후보에게 요구한 것은 '급진적인 증세'를 하지 말 것과 '참여정부의 안정감 부족'이란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관료 출신으로는 박봉흠·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 변재진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자문그룹에 함께 했다.
이밖에 학계 출신은 박영철 고대 석좌교수,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노성태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이진순 전 한국개발연구원장, 허상만 전 순천대 총장, 이원덕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등으로 대부분이 중도성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