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서 지난 8일 오전 4억뷰(View)를 돌파했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지난 7월 15일 공개된 후 52일 만에 1억뷰를 돌파했고 80여일 만에 4억뷰를 훌쩍 넘겼다. 80여 일만에 4억뷰 돌파는 유튜브 동영상 역사상 대기록이라고 한다.
싸이 열풍이 세계적 '말춤 신드롬'으로 이어지면서 '강남'과 한국이 함께 주목을 받고 있다. 중독성 넘치는 비트, 코믹한 말 춤, 바지내리고 변기에 앉아 쏘아대는 갱스터 랩 등 포복절도할 익살 앞에 언어장벽 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싸이의 노랫말 '나는 사나이'를 'Not a Sauna Air', '아름다워, 사랑스러워'를 'Adam there was, Sadam said oh woah'라고 뜻도 모른 채 소리 나는 대로 읊어대며 열광하는 외국인들도 있다.
세상이 '강남스타일'로 뜨겁게 달구어 지면서 '강남'이 어떤 곳이며, '강남스타일'이 어떤 것이냐는 의문이 없을 수가 없다.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강남은 한국의 베벌리힐스(헐리우드 부자동네)를 의미하지만 싸이의 생김새와 춤, 뮤직비디오에서 그려진 상황은 전혀 베벌리힐스 같지 않다"며 "그것이 바로 (인기비결) 포인트같다"고 분석한다.
'배불뚝이'에 촌티 흐르는 싸이가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니고, 지하철이나 주차장, 엘리베이터, 찜질방, 놀이터, 체육관 등 친근한 우리 이웃 공간에서 신나게 흔들면서 우스꽝스럽게 노는 모습은 강남에 사는 한국 부유층의 스타일은 아닐 테고, 강남에 대한 역설(逆說) 내지 반어(反語)법적 표현이 아니겠느냐는 유추다.
싸이 자신은 한 인터뷰에서 "몸짱에다 근사하고 멋진 남자가 자기가 강남스타일이라고 하면 '쟤 왜 저래' 하며 대꾸를 하겠지만, 엉뚱한 제가 하니깐 사람들이 웃게 된다"며 '강남스타일'은 "자신이 강남스타일이 아닌 게 핵심"임을 강조했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피곤에 지쳐있고, 날씨도 무덥고, 경제도 어렵고, 사람들 지갑도 얇아져서 그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주자는 의미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 "사회적 메시지는 없고 단순히 사람들을 웃게 하자는 것"이었단다.
하지만 그런 싸이야말로 강남8학군(반포초등-반포중-세화고)출신에 외국유학까지 하고 놀아볼 만큼 놀아본 소위 '뼛속까지 강남스타일'이라는 사실이 주목을 끈다. 세련되고, 부(富)티 나고, 허세부리는 강남의 주류들을 향해 "니들이 진짜 강남을 아느냐"고 다그치는 '비주류의 반란'이란 해석도 이래서 나온다.
싸이가 정색을 하고 강남을 비판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19금 노래로 분류된 '해가 지면'에서 하룻밤에 술값으로 몇 백, 몇 천만원을 뿌리는 졸부 자식들의 행태를 거칠게 비판했다고 한다. 낮과 밤이 다른 화끈한 강남여자를 빗댄 '강남스타일'의 노랫말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본명 박재상을 '싸이코'를 연상케 하는 '싸이'로 개명할 정도로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그가 자기비하(卑下) 개그와 몸놀림으로 현실조롱과 풍자를 시도했을 수도 있다.
'강남스타일'이 지구촌에 '잘나가는 한국'을 널리 광고하면서 국가브랜드를 높여주는 한편에선 '한강의 기적'속에 숨겨진 한국적 역설에도 바깥세계가 함께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졸부에다 명품과 성형수술로 치장된 화려한 강남스타일 이면에 사회양극화로 생존마저 위협받는 한국의 '응달'에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롬니 후보는 서민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탕한 삶을 즐기는 미국 부자들을 비꼬는 내용으로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했다. '강남스타일' 가사에서 나오는 '섹시 레이디'를 '웰시(부유한) 레이디'로 바꾸고, 백댄서들도 주요지지층인 돈 많은 백인 중년 여성들을 출연시키며 미국속의 '강남 식 천민자본주의 행태'를 고발하려했다.
런던의 파이낸셜타임스(FT)의 한 칼럼니스트는 한국이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세계무대에서 자신감을 더 해가고 있는 한편에서 국내에서 이상할 정도로 '존재감의 위기'(existential crisis)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남스타일의 대성공은 '잘나가는 한국'의 징표임이 분명하지만 높은 자살율과 위험수준의 낮은 출산율, 무소속 대선후보를 선호할 정도로 기성 정치와 정당에 대한 짙은 불신 등 그 이면에 숨은 역설에 주목한 것이다.
거시경제지표들은 인상적이지만 더 많은 한국인들이 빈곤감을 느끼고, 장시간 근로에다 자녀 입시지옥과 청년실업 등 사회적 압력에 짓눌려 절망감에 빠져있는 현실을 부각시킨다. 발전한 나라들 가운데 소득불평등이 가장 심하고, 재벌기업들은 나라바깥에서 한국을 자랑스럽게 하지만 국내에서는 납품업체를 쥐어짜고 중소기업을 도산으로 몰아넣는 악한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싸이 열풍과 함께 우리 경제를 칭찬하는 소리 또한 최근 바깥에서 꼬리를 물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올렸고, 세계경제포럼(WEF)은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19위)를 다섯 계단이나 올렸다.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김석동 금융위원장)라던 정부는 이제 "노는 물이 달라졌다"(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고 자화자찬한다. 올해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게 확실시되고 국민들은 늘어나는 빚에 한숨만 나오는데 왜 나라의 경쟁력은 오르는 것일까.
국가신용등급은 다른 나라들이 돈을 빌려 줘도 떼이지 않을 위험을 측정하는 지표이지, 종합 경제력을 측정하는 지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를 동급으로 혼동하는 데서 괴리가 생긴다. 신용등급이 오른 것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 관리를 더 잘 했다는 뜻이지 등급상승으로 우리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도한 수출 의존도나 주식 시장에서의 높은 외국인 비율, 가계부채 문제 등은 앞으로 악화될 소지가 크고, 이런 요인들은 지금의 신용등급 및 경쟁력순위 상승과 상관없이 멀지 않은 미래에 리스크 요인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G20(주요20개국)의장국'의 외교적 명성 뒤에는 남의 것을 베끼고 흉내 내는 '짝퉁 공화국'이란 불명예도 따라 다닌다.
싸이는 "해외진출이나 월드스타가 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아직도 (이 모두가) 안 믿겨진다"고 했다. 그 스스로 자신이 강남스타일이 아니라면 그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며 '잘나가는 대한민국'에 들 떠 있는 우리들은 과연 누구인가.
대중가수 한 사람의 우연한 '대박'을 두고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열풍이 우리자신의 겉과 속을 함께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