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유례없는 결집으로 투표율이 75.8%로 높아진 맞대결에서 박 당선인은 51.6%, 1천577만여표를 얻으면서 서울과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과거사 논란과 정권심판론, 야권단일화라는 '3대 장애물'을 뛰어넘고 '선거의 여왕'답게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박 후보 당선이 갖는 정치사적 의미는 작지 않다. 지난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으로 과반 득표 대통령이 탄생했다.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이란 기록과 함께 아버지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부녀가 처음으로 대통령에 오르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박 후보의 당선으로 새누리당 보수정권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10년을 이어가게 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재창출보다 정권교체 여망이 높았음에도 박 후보가 승리한 것은 보수대연합'으로 보수표의 결집을 이뤄낸 데다 민생과 가계부채 해소, 중산층복원 등으로 중도성향의 부동층 표심을 효과적으로 파고든 때문으로 보인다.
범야권 및 민주당의 무능으로 인한 반사적 승리의 성격도 없진 않지만,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책임 있는 변화'를 다짐한 박 후보의 '신뢰의 리더십'이 국민들의 표심을 더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당선인은 자신의 승리가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려는 열망이 가져온 국민 마음의 승리"라며 "국민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또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하지만 '100% 행복한 대한민국'은 결코 말처럼 쉽지가 않다. 대선이 보수 대 진보 진영 간 총력전으로 치러진 데다 막판 네거티브전이 기승을 부리면서 사회적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선거운동 기간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고, 특히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과반에 육박한 유권자를 끌어안고 설득해 나가는 리더십이 대통령 당선인의 첫 과제가 된 것이다.
박 당선인은 선거기간 내내 "국민을 편 가르거나 선동하지 않고 100%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약속 이행 차원에서 이미 '국민대통합위원회'까지 구성해 놓은 상태다. 대통령이 국민전체를 보고 국정을 운영하려면 '대탕평인사'가 첫 걸음이고, 이는 곧 발족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에서부터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박 당선인은 대선기간 내내 강조해왔던 '정치쇄신'을 추진해야할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으로 상징되는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그 자체로 시대정신이 돼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실제 박 당선인이 내놓은 중앙당의 공천권 축소와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국회의원 후보를 여야가 동시에 국민참여 방식으로 선출하는 방안, 기초자치단체장과 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등은 그 자체로 혁신적인 정치개혁방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들 개혁방안은 결국 여야, 정치권의 합의 속에 추구돼야 하는 사안들이다. 대통령에 취임하면 임기 전반기에 전국단위의 선거가 없고 새누리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해 국정쇄신에 드라이브를 걸고 싶은 유혹도 생길법하다.
이 과정에서 '불통'과 '독선'은 금물이다. 국민 절반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대립과 반목의 5년을 지새는 한국정치의 비극은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박 당선인은 글로벌 경제위기의 탈출과 국격 향상 등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후퇴와 의회정치 무력화, 편중인사와 민주적 소통 부재 등으로 비판받았던 이명박시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
민생을 보살피고, 의회․ 정당정치를 회복해 새 정치에 대한 열망에 부응하고, 가치와 세대, 계층과 이념에 따라 갈갈이 찢긴 우리사회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일은 실로 벅찬 과제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탈(脫) 여의도 정치'를 추구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달리 자신을 '한국현대사'로 자처할 만큼 철저하게 정치 DNA를 지닌 정치가여서 기대를 걸어 볼만도 하다.
'박근혜 시대'가 처한 안팎의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안으로는 저성장, 고령화시대를 맞아 점증하는 국민의 복지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경제민주화'에의 시대적 요청에다 미래의 먹거리와 성장동력을 만드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대기업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안기며 경제위기를 넘고 '어머니'처럼 민생을 보듬어야한다. 92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가계부채와 막대한 정부ㆍ공기업의 재정적자, 극심한 부동산 경기침체 등 해결이 쉽지 않은 난제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도 다급한 현안이 즐비하다. 대북정책은 지난 10년간의 포용정책과 지난 5년간의 강경정책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북한과 당국 간 대화의 틀을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 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북한도 설득하고 미국도 설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한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2기 정부와 중국의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조성된 미․중간 긴장관계와 아베 신조 정부의 재등장으로 더욱 노골화될 일본의 극우화 움직임도 '발등의 불'이다.
기존의 한미동맹을 핵심축으로 삼되 이명박 대통령 정부 때 소원해진 중국ㆍ일본과의 관계를 균형 있게 복원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위해선 위안부와 독도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및 영토 문제, 극우화 움직임에는 단호히 대처하되 경제분야 등에서는 사안별로 공조하는 유연성도 갖출 필요가 있다. 어느 하나도 쉽지 않은 국가적 과제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이념적, 세대 간 양분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개혁을 임기 초에 실행에 옮겨 정치에 대한 신뢰부터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박 당선인의 정치개혁안은 법제화가 필요한 부분이 많아 국회에서 여야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일부는 개헌이 전제돼야 하는 공약도 있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선거 직후부터 새 정부 출범까지 여야 지도자가 만나 새 틀을 짜기 위한 '국가지도자 연석회의'를 제안한 바 있고, 집권 후 국민적 공감대를 전제로 한 개헌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이 모두는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야 하고, 차제에 여야정치권이 공존하는 새 정치모델을 정립해야한다. 최고 권력자의 실천의지만으로는 안되고 박 당선인이 정치인생에서 가장 강조해온 약속과 원칙, 신뢰로 풀어 나가야한다.
'과거사 문제'의 후속 조치, 민주화세력과의 화해를 위한 '대통합행보'도 연속성을 갖고 이어져야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첫 여성대통령은 그 자체로 국가이미지를 끌어올린다.
나아가 국민통합과 새 정치로 국민행복과 경제중흥의 기틀을 닦을 수만 있다면 부친 박정희대통령을 뛰어넘는 '민족중흥의 딸'로 자리매김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